경륜/모순에 관하여

[스크랩] 죄란 무엇인가?

무형11 2010. 4. 20. 17:24

죄란 무었인가?

 

우리는 세상에서의 모든 문제, 슬픔 고통은 죄에서 기인함을 알고 있다.

신문이나 뉴스 안에서 죄를 빼고 나면 할 말과 쓴 글이 없을 것이다.

뉴스라는 뜻의 새로운 소식은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강도,살인,방화,사기,거짓말,횡령,등등 결국 과거에도 있는 죄들이였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오늘도 2가지 큰 사건이 뉴스를 가득 채웠다.

하나는 연쇄살인범과 하나는 용산참사이다.

담담하게 살인을 재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런데 내가 의아한 것은자신의 얼굴이 알려지자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 어떻게 살아가냐며 토로하는 것이다.또 자신의 일생을 책으로 써서 그 인지대로 자식에게 먹고 살 길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는 자식을 사랑하는 살인자인 것이다.

그리고 용산에서 시위하던 세입자들 5명이 불길에 싸여 죽었다.

두 사건과 공통점과 다른점이 있는데

같은 점은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것이고

다른점은 하나는 살인범 한사람이 계획을 하고 저지른 범행하고 처벌을 받을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여러명 개발업자,용역,구청,경찰,정부등의 합작품으로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살인범에게 손가락질하며 욕을 하지만 용사 참사를 일으킨 당사자들은 당당하게 법과 원칙을 지키려 했다며 오히려 죽은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에 옹호하고 지지한다.

 

우리는 거짓으로 언론을 조작하여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수천을 수만을 죽이고 고통을 안긴 미국 대통령은 명예롭게 퇴임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 찍어준 국민들이 있었다.

히틀러도 대중에게 확고한 지지를 받으며 정권을 잡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히틀러에게 지지를 보낸 대중들이 없었더라면 몇천만명을 죽이는 대학살은 없었을 것이다.

 

하여튼 살인범은 7명 죽이고 사이코 패스라고 불리며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불리지만 욕을한다.

하지만 수만을 죽음에 이르도록 한 사람은 지도자는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이처럼 우리는 선과 악을 판단함에 있어서 많은 모순을 지니고 있다. 더하여 우리가 개입한 사건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죄인을 미워한다 하지만 힘을 가진 죄인은 존경한다.

사람들끼리 평가하는 죄의 잣대는 얼마나 모순되고 편협되는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사람의 선과 악의 판단이 아닌 성경에서 선과 악을 판단하여

죄의 본질이 무엇인가 찾아보자.

 

아담의 죄

  [롬5:12]이런 연유로 한 사람에 의하여 죄가 세상으로 들어오고 그 죄에 의하여 사망이 왔으니,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느니라.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죄”는 한 사람에 의하여 들어왔다고 한다.

이 한사람은 아담이다 이 아담의 죄는 무엇인가?

 

창2:17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3:11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벌거벗었다고 누가 네게 말해 주더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했던 그 나무의 과실을 네가 먹었느냐?"

 

즉 아담의 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과 악을 알게 아는 지식의 나무를 먹은 것이다.

아담의 행동을 유영철이나 강호순 같은 살인자들처럼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하지만 그의 행동으로 인하여 파생된 문제들은 가장 악독한 살인자나 히틀러나 독재자들보다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바로 죽음이 인류에게 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적 어머니가 숨겨놓은 꿀을 한 숟가락씩 몰래 먹은 비슷한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과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사실 엄격한 하나님 보다는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게 동정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선악과의 영향으로 선과 악 즉, 가치있는 것과 가치없는 것, 미워해야할 것과 사랑해야할 것을 스스로 만들어 판단한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잘못하신 점이 무엇인가?

지구를 만들어 아담에게 살도록 주셨고 사탄을 정복할 권세도 주셨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도 알려주셨다.

객관적으로 법적으로 판단해서 하나님께서는 잘못하신 것은 없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모를까?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하와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는  아담처럼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한다.

하여튼  우리 조상 아담은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오는 역사상 최악의 죄를 저지른 것이다.

 

인류의 죄

선악과를 먹지말라는 명령을 어긴 것은 아담이지 모든 인류가 아니다.

즉 지식의 열매를 먹은 행위는 아담의 행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지식의 열매를 먹는 행위를 하지 아니하였는데 왜 나에게 죄가 들어온 것인가?

여기서 우리의 죄는 단순히 명령을 어기는 행위가 아님을 알수 있다.

즉 죄란 우리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어떠한 상태에 빠진 것이다.

먼저 아담이 지식의 열매를 먹고 달라진 것들을 찾아보자..

 

첫째 아담은 선과 악을 알게하는 지식을 알게 되었다.

선악과가 포도열매든 사과 열매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작용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것이다.

분명 이러한 지식은 아담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들어온 것은 확실하다.

아기나 바보가 아닌 이상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안다. 그것이 양심이든 교육이든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나쁜 짓을 하는 것을 거의 본능적으로든 안다. 양심은 교육에 의해 강화되거나 예민해지기는 하나 교육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가장 양심적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여튼 거의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선과 악을 판단하는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기 옳은 대로 행한다.

 

[잠21:2]사람의 모든 행위가 자신에는 옳으나, 주께서는 마음들을 감찰하시느니라.

 

두 번째로 죽음이 들어왔다.

또 하나는 죽음이 들어온 것이다. 아담은 선과 악을 알게 되는 즉시 죽었다.

그것은 육신적인 죽임이 아닌데 즉시 몸은 죽지 않고 900년이나 넘게 살다 죽었기 때문이다.

이 죽음은 성경에서 영의 죽음이라고 한다.

 

[엡2:1]허물들로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

[엡2:5]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니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골2:13]너희의 들과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살리셔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셨으니

[요6: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우리는 모순되게도 죽은 생명을 얻는다.

아담의 죽음은 단순히 아담에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이 되는 것이다.

즉 아담이 낳았던 자식들은 아담과 마찬가지로 죽은 영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창5:3]아담이 일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습대로 자기의 형상을 따라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불렀더라.

 

[고전15:49]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진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도 입으리라.

[골1:15]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첫 태생이시니

 

우리는 윗 구절에서 아담의 형상즉 모양과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다.

즉 아담도 인간이듯이 예수님도 인간이다. 즉 이 형상은 몸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즉 아담의 형상은 영이 죽은 형상이다.

이것이 바로 아담의 죄의 결과인 것이다.

 

죄란 바로 영이 죽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죄의 상태로 태어났다고 모두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우리가 심판을 받는 것은 열매 즉 행위이다.

 

죄를 짓지 않는 것과 죄가 없는 것의 차이

 

여기서 죄와 죄들의 차이점을 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법정에서 살인자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그의 자식에게게 죄의 책임을 무는 경우는 없다.

살인자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상태이다.

하지만 그 아들에게는 살인죄는 없다.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아담의 후손이라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것이 성경에 말하는 죄이다.

하지만 그 아기들에게는 아담과 같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거나 하는 법죄 즉 죄들은 없다.

 

죄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죄의 상태에 있다고 반드시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심판을 받는 것은 죄를 지을 가능성에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결과로 심판을 받는 것이다.

 

[욥1:22]모든 일에도 욥이 를 짓지 아니하였고 어리석게 하나님을 탓하지

[히4:15]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는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라. 아니하였더라.

 

윗 구절에서 죄를 짓지 아니한 욥과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있다.

차이점이 무엇인가? 욥은 죽은 아담의 후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죄의 상태에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는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 죄는 있으나 몸이나 말로 죄를 짓지 아니한 것이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아담의 후손이 아니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남자의 유전자에 조상을 알수 있는 염색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성은 남자의 성을 따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태어나셨지만 그 태생은 아담의 씨가 아니다.

그분은 영은 아담과 같이 죽어 있는 영이 아니셨다. 그분은 죄를 알지도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는 분이셨다.

우리의 아기들을 보라 그가 똥을 아무데나 싼다고 그가 잘못하고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가 그가 벌거벗겨 사람들이 본다고 아기가 부끄럽다고 가리는가?

이것이 죄를 모르는 상태이다.

더 나아가 그에게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담의 생명이 없다”는 말이다.

아담의 생명이 바로 죄이다.

 

[고후5:21]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히4:15]이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없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는 없으신 분이기 때문이라.

 

죄는 아담의 생명이다.

[롬7:17]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이상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20]이제 만일 내가 원치 않는 것을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것은 더이상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죄는 나의 옛 생명이다. 그것에게는 강력한 힘이 있으며 나를 원치않는 행위를 하도록 조정한다. 첨에는 죄에 문제가 있다고 죄를 미워하지만 알게 될 것이다. 죄가 문제가 아니라 죄를 사랑하는 내가 문제라는 것이다.

죄를 사랑하는 나 바로 아담의 생명을 받은 나인 것이다.

넘버2에서 최민식의 대사가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이것은 정말 엿 같은 말이다. 죄가 무슨 죄가 있냐 죄를 짓는 인간이 잘못이지...

[고전15:56]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능력은 율법이라.

내가 원치 않는 것을 행한다. 여기서 “나”는 새 생명이다. 죄를 원하는 내가 있다. 이것이 바로 아담의 생명의 “나”이다.

율법을 가장 잘 지켰던 바울도 이길수 없는 것이 죄이다.

죄의 강력한 능력을 가장 잘 알수 있는 방법은 양심이나 율법을 지키는 것이다.

탐심을 버리고 가장 큰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롬7:7]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정욕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마22:3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갈5:14]온 율법이 한 마디 말, 즉 이 말로 이루어졌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밝은 빛으로 우리의 모습을 좀더 정확히 볼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유영철이나 강호순과 같은 사이코패스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살인죄는 큰죄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는 작은죄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전히 구원 받은 후에도 여전히 살인죄보다 더 큰 죄를 지었으며 짓고 있는 것이다.

양심과 의로 결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절대 불가하다는 것이며,

우리가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께 나아갈수 없음이...

[요12:25]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미워하는 사람은 그것을 영생에까지 보존하리라.

 

출처 : 성경을 찾으라 (Search the scriptures)
글쓴이 : 나눔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