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 생활 (교회를 다스리는 목사제도)
오늘날 한 지역에 교회가 세워짐에 있어서 고려되는 3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목회자가 있는가?
둘째는 예배를 드리는가
그리고 세째로 교회 예배당이 있는가 이다.
이중에 한가지라도 없으면 교회로 인정하지 않을려고 한다.. 목회자가 없거나 예배당이 없다면 더욱 그러하다...
교인이야 명수가 적어도 큰 상관이 없으니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즉 교회가 생기려면 반드시 목사, 전도사, 등등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주일날 예배를 드리기 위한 집회 장소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한주동안에 기도모임과 성경공부 모임을 하더라도 주일날
모여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교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교회를 다스리는 목사가 있는가?
교회 전체의 책임을 지고 성도들을 키우며 목양하는 일꾼이 있는가?
사실 성경에는 목사라는 단어는 한 단어도 없다.
이러한 단어를 양을 키우는 사람을 대체하는 단어 목자라는 단어라고 간주한다.
이 단어는 말 그대로 양을 키우는 사람들이였으며 이러한 모습이 구약에 하나님을 비유되어 표현되었다.
[시23:1]다윗의 시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한 것이 없으리로다.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한다..
[요10: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내어 놓으나
[엡4:11]그가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들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들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들과 교사들 주셨으니
에서 근거를 하여 목자라는 단어을 목사로 통용한다.
하지만. 현대 교회에서 말하는 목사라는 단어와 교회에서는 목자라는 단어는 여러가지로 다른 점이 많다.
목사는 교단에 속한 신학교를 나오고 목사 안수를 받아 특정 교회에 보내져 월급을 받으며 교회를 운영하는 직업을 말한다.
하지만 성경의 목자라는 단어는 직업을 의미하기 보다는 양을 돌보는 사람에서 사람을 돌보는 사람 즉 역할을 의미한다.
이구절에서 복음 전도자는 복음을 전하는 일, 장로는 양을 돌보는 역할, 교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장로들을 주셨다는 구절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 구절에서는 직분을 말한다.
빌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의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쓰노니
이 구절 만큼 교회 조직을 더 분명히 언급한 구절은 없다.
교회 안에는 세부류 성도들, 감독들, 집사들이 있다.
집사들은 교회의 사무적인 일들을 돕는 사람들이고 아래구절처럼 장로들을 감독들로 칭함을 알수 있다.
행20:17 그리하여 그가 밀레토에서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니
행20:28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조심하고 모든 양떼에게도 그리하라. 이들을 위하여 성령께서는 너희를 감독자로 세우셨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느니라.
딛1:5 내가 너를 크레테에 남겨 놓은 이유는 너로 부족한 일들을 바로잡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읍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1: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비난받을 것이 없고 자기 고집대로 아니하며, 쉬 화내지 아니하고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즉 교회의 장로들은 교회를 돌보는 목자로서의 역할과 감독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교회에는 성도들, 장로들, 집사들 세 부류의 직분만 있는 것이다.
장로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회의 재정과 일을 처리하는 장로들과 설교와 예배를 인도하는 담임 목사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다.
그럼 목사에 대하여 다시 정리해 보자.
성경에서 현대 교회에서 말하는 목사(장로,감독)은 하나님에 이해 특별한 보내심을 받은 사도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사도처럼 직분을 받아 외부에서 파송되어온 부류가 아니다. 이들은 본래 한 지역에 있던 형제들이다.
즉 초기 장도들은 사도들에게나 복음전도자들에게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성도들보다 더 성장하고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성도들을 돌보기를 좋아하는 이들을로서 사도들이 다시 이 지역에 방문하였을때에 장로로 세웠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몇가지 있는데
목사(장로)는 그 지역의 일반 형제들 중에서 선정되었다.
즉 다른 지역에서 파송되거나 사명을 받은 일꾼이 와서 세워지지 않았다. 이들은 직장과 가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단지 말씀에 능숙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였다.
즉 다른 곳에서 온 사도는 지역 교회 조직 안에 없었기 때문에 "형제"의 자격으로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다.
초기 교회에서 사도들은 한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모은다. 이들에게서 좀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장로들로 삼아 그들은 교회를 감독하였다. 사도들은 다시 다른 지역으로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설령 사도들은 교회를 세웠다고 해서 그가 담임목사가 되지 않는다. 지역 교회의 일들은 지역교회에서 결정하고 운영을 했던 것이다.
행28:23 그 후 그들이 그와 날을 정하여 많은 사람이 그의 숙소로 찾아오니, 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또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로써 예수에 관하여 그들을 설득시키더라.
여기서 바울은 한 교회의 목사가 되어 교회를 리더하지 않았다.
즉 교회는 한 사람의 목사나 사도에 의하거나 몇 몇의 장로들에 의해 운영하지 않았다.
장로들은 교회의 사역을 하는 자들이 아니라 감독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감독자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감사처럼 일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아닌지 감독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도자가 없으면 교회가 될 수가 없다고 한다. 어느 교회에 가면 반드시 누가 책임자인지 다른 말로 누가 목사인지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지역에 있는 교회는 지역의 성도들이 책임을 져야한다.
교회에 직업 목사가 생긴이후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일은 목사가 전담으로 하고 일반 성도는 그들을 돕는 위치라는 생각을 지니게 된 것이다.
즉 목사가 지시하는 말만 잘 들으면 그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피동적 생각하는 것이다.
초기 교회의 사역에는 실패와 성공이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들이 더하여 진것이 축복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박해로 교회 성도가 줄어들때도 교회 사역은 실패가 아니였다.
하지만 교회의 중심이 목사가 되자 교회의 성도의 증가와 교회당의 크기는 한 사역자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교회의 교리나 가르침을 중심으로 모이기 보다는 유명한 한 사람의 인격이나 감동적인 설교로 교회에 모이고 그들이 욕심이나 죄로 인하여 잘못되면 교회를 떠나게 된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모이는 것이 얼마나 육신적인 일인지 성경에서 경고한 바가 있다.. (고전3:4)
성경에서 일꾼들에게 월급을 주었다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바울이나 사도들이 에베소 교회에서 매달 혹은 몇개월에 한번씩 얼마를 받았는지 아는가
구약에 유일하게 발라암이라는 선지자 만이 은사를 돈으로 바꾸었다.(민22:5-7)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손수 일하는 것이 좋고 그로 인하여 들어오는 돈이 좋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의 쓸것을 하나님께 바라봐야 한다. 일꾼이 어떤 단체에서 주는 고정적인 월급을 바라서는 안된다.
돈은 권위이다. 돈은 사람을 지배할수 있다. 세상에서 돈을 받은 사람치고 그것을 주는 사람에게 지배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고전9:13 성전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제단을 섬기는 사람들은 제단에 있는 것으로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전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복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명령하셨느니라.
이구절은 목사가 월급을 받는 것에 대해 정당해 하는 구절로 사용하는 내용이다.
복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이것이 교회에서 고정적인 월급을 받아야 한다는 뜻인가?
바울이 이 말을 했을 때는 지금과 같이 고정적인 급료 월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였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서 헌금을 받울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정적이거나 정기적인 돈이 아니였다.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감동을 받아 자발적으로 주는 돈이였다.
빌4:16 고후11:9에서도 교회가 책임지고 지원하는 고정적인 급료를 말하는 것이 아니였다.
여기서 더 큰 문제 복음으로 살아야 하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일꾼"은 누구냐라는 점이다.
즉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았는가의 여부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께서 책음을 지시고 복음으로 살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급료를 받는 사역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바라지 않고 목회자나 교회 헌금을 많이하는 성도들을 바라는 점이다.
복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급을 의지하고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지 교회 월급을 바라며 사는 삶이 아닌 것이다.
바울 자신도 복음으로 살지 않고 친히 장막을 지었다.(고전 9장) 그가 덜 영적이어서 하나님의 공급을 의지하지 않는 것인가?
바울에게 하나님의 감동으로 물질을 주고자 하는 성도들이 없었겠는가?
바울은 그들에게 받을 자격이 있었고 받을수 있었으나 거절한 것이다.(고전9:11-15)
현대 교회의 조직과 초대교회의 조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중 하나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교회 즉 사역자와 비 사역자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다.
비사역자 즉 평신도는 사역자인 목사에게 정기적인 헌금과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일을 잘하는 영적인 성도로 인정하고, 자신도 또한 할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모든 종교제도에서 볼수 있다 불교나 천주교에서 얼마의 시주와 예배로 불심을 인정받고 사역자는 그들을 대신해서 일을 한다.
이것이 바로 니콜라파의 다른 형태의 가르침인 것이다.(계2:16)
이러한 모든 가르침이 문제는 한 사람의 가르침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들이 자신들을 주체적인 하나님의 성도와 사역자로서 인식하지 않고 제사장을 두고 그들을 대신하여 세우려는 게으름과 안일함의 결과인 것이다.
위치만니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 생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