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안티기독교인이 본 기독교 구원에 관한 교리 비평- 설명
아래의 글은 본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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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diamob.co.kr/magie/frmView.aspx?list=board&id=102815&page=5&cate=29870
기독교가 보는 세계는 원죄로 시작해서 구원으로 끝이 난다.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원죄를 짓고 추방당한다.
이것이 인류의 타락이며 구원사의 시작이다.
예수는 이러한 인류의 원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죄가 없음에도 십자가에서 죽고, 모든 이의 죄를 대속한다.
이걸 믿으면 구원받아서 천국에 간다는 것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적인 원죄, 대속, 구원론인 것이다.원래 원죄는 성적인 타락으로 해석이 되었다. 예수는 아무런 성적인 오염이 없는 동정녀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 났기 때문에 원죄가 없다는 해석이 예전에는 꽤 일반적이었으며 카톨릭에서는 마리아 역시 평생을 동정녀로 살았으며 마리아 역시 원죄가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적인 문제를 원죄로 연결시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먹혀들지 않는 황당한 교리가 되고 만다.그래서 요즘 기독교에서는 원죄가 성적 타락이 아닌 죄를 행하는 경향이라던지 혹은 죄를 짓는 속성이라는 말로 바꾸어 설명하고 있다. 원죄도 시대가 바뀌니 진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독교 교리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필요에 따라 바뀐다라는 좋은 근거다. 목표의 내용은 바뀌었지만, 이름이 같으니 계속 원죄론을 주장하는 것은 어떻게 보자면 눈가리고 아웅거리는 셈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원죄론 자체는 남아 있으며, 이 원죄를 해결하고 구원을 받는다라는 것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임은 여전하다.기독교 원죄론의 가장 문제점은 원죄는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죄라는 것은 구체적인 사건이다. 어떤 행동이 있기 전에 그것이 눈에 보이는 행동이건 혹은 생각만 했건 상관이 없이 어떤 사건도 없이 죄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라는 주장은 말도 안되는 엉터리 주장이다. 아니 원죄라는 것은 죄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가장 황당한 주장이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주장이다.
이걸 현대판 원죄론으로 해석해서 인간은 죄를 짓는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다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해석을 한다면 기독교의 원죄론은 정말 황당한 주장이 되어버린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이 기독교의 주장이다.
인간은 전부 죄인이고 따라서 전부 사망하며, 기독교를 믿고 예수를 믿어야 이 사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것인데, 죄를 짓지도 않았지만, 원죄라는 죄도 아닌 것을 가지고 죄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틀렸으며, 어떤 죄건 무조건 사망이라는 식의 재판을 하는 야훼라는 재판관은 잔인무도한 학살자일 뿐이다.
더 황당한 교리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죄에 대해서 대신 벌을 받는다라는 교리다. 이거야 말로 웃기는 교리다.
공의가 넘친다라는 신이 이런 황당한 교리를 당연하게 내린다라는 것은 웃기는 일일 뿐이다. 고대 중동의 유대 잡신 추종자들이 자기들 먹고 살 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고, 이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규칙을 확대해석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고대 중동에서는 비둘기와 양을 잡아 바쳤지만, 수천년이 지난 요즘도 똑 같은 일이 여전히 벌어진다. 지상의 금은보화는 죽으면 소용없지만, 천국에 쌓은 금은보화는 죽어서도 값진 것이라는 설교가 여전히 유효한 것이 현실이며, 유대잡신에게 제사를 별려 먹고 살던 유대 무당들이나 현대의 목사들이나 생존수단에 있어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원죄도, 예수의 대속도 말이 안되니 이를 통한 구원이라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 또 누구를 누구에게서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한다는 것일까?기독교에서는 모든 인간은 죄인이고, 그래서 사망을 당하고, 지옥불에서 바베큐가 된다고 가르친다. 그 시스템은 바로 공의의 신인 야훼가 만들었으며, 재판관인 야훼가 심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심판을 할 때 예수를 믿으면 대속에 의해서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불 바베큐가 되는 것이다. 전에 쓴 글에 링크한 와당카의 내용과 무엇이 다른가? 와당카의 깡패는 논술학원이라도 다니지만, 기독교에스는 2000 년 된 헛소리만 계속 주장하고 있다.기독교의 딜레마는 이런 기본적인 교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이것을 포기하면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으로 착하게 살자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기독교가 이렇게 되면 기독교의 근본적인 체계가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원죄도 대속도 구원도 없는 기독교는 속이 없는 만두나 다를 바가 없다.얼마전까지 자유주의 기독교, 열린 구원론 등등의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러다가 근본주의에서 공격하기를 예수만이 구원이라는 것을 거부하느냐라는 질문을 한 것이다. 이게 바로 기독교의 한계를 가장 잘 보여준 사건이다. 한마디로 "당신 기독교 신자 맞아?" 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기독교... 이 종교는 원죄를 포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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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내용은 안티기독교인의 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내용이 정말로 성경적으로 틀린 내용인가 자문해 보아야 할것입니다.
먼저 성경에 "원죄"라는 말이 있는가 입니다.
원죄라는 단어는 성경에 한 단어도 나오지 않는 개념입니다.
즉 이러한 원죄의 개념은 다분이 사람들이 만든 개념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없는 이러한 단어를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는 주장이다.)
이 바른 성경의 교리인가입니다.
먼저 죄인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자 합니다.
성경의 죄인 이나오는 72구절중 대부분의 구절에서 “죄인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창13:13]그러나 소돔인들은 사악하였고 주 앞에 극심한 죄인들이었더라.
죄인이 나오는 첫 번째 이구절부터 시작하여
[유1:15]이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그들 가운데 있는 경건치 않은 모든 자가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말한 모든 거친 말에 대하여 정죄하시려는 것이라."고 하였느니라.
단 한번도 아기나 죄를 짓지 아니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한 구절은 없습니다.
[롬5:19]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이 구절을 마치 아담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해석을 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분명히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했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담이 선과 악을 알게하는 지식의 열매를 먹은 이후 그 후손들 중 일부는 선을 선택하여 의인이 되었고 대부분은 악을 선택하여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중 선을 선택한 사람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창5:24]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없어졌더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음이라.
[히11:5]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그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증거를 지녔느니라.
아담의 후손 중 에녹이란 사람은 하나님께 기쁨을 주는 삶을 살다가 죽음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갔습니다. 에녹은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지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에녹이 죄인이라는 구절 있습니까? 에녹이 아담에게 태어났기 때문에 죄인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대려가신 것입니까?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죄인이라고 부른다면 의인도 의를 행하지 않은 의인입니까?
하여튼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성경에 기록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아벨, 노아, 아브라함, 느니웨 사람들 등선을 선택하고 의인이라고 불리운 많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겔18:24~27 그러나 의인이 돌이켜 자기 의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여 악인이 행한 모든 가증함대로 행하면 그가 살겠느냐? 그가 행한 그의 모든 의는 언급되지 아니할 것이며 그가 범한 그의 허물과 그가 지은 그의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또 악인이 돌이켜 그가 범한 악에서 떠나 합법적이고 옳은 것을 행할 때 그는 자기 혼을 구원하리라.
이 구절은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적용되는 구절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거나 믿지 않았지만(구약의 일이기 때문) 자신들의 선행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악을 행하던 자들도 악에서 떠나 선한 일을 행하여 혼이 구원받았습니다.
[요5:29]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러한 진리는 거의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다루심입니다.
문제는 선을 행하고 의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입니다
때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악을 선택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대도 있었습니다.
창6:5~6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세상에 창대해짐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구상이 계속해서 악할 뿐임을 보시고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으니, 그 일이 그의 마음을 비통케 하였더라.
하지만 이 당시도 노아와 같은 의인이 있었습니다.
창 6:9 이것이 노아의 내력이라. 노아는 의인이요 그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이처럼 주위에 의인이 거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다음 구절처럼 선을 행하는 자가 한명도 없다고 했고 바울은 이러한 상황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마치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는 구절로 곡해합니다.
[시53:3]그들이 각자 돌아갔으며, 모두 다 더러운 자가 되어,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없도다, 단 한 명도 없도다.
[롬3:12]모두가 탈선하여 함께 무익하게 되었으며 선을 행하는 자는 없으니, 없도다, 한 사람도 없도다.
이러한 성경의 표현은 사람들로 많은 오해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몇구절만 봐도 이러한 구절은 모든 사람은 선을 행할수 없다는 가르침이 잘못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갈6:9]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쓰러지지 아니하면 때가 되어 거두리라.
[살후3:13]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이 기독교의 주장이다. 인간은 전부 죄인이고 따라서 전부 사망하며, 기독교를 믿고 예수를 믿어야 이 사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것인데,)
여기서 인용 구절은
[롬6:23]이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
여기서의 “사망”은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 사망을 육체적 죽음을 말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아닙니다.
죄를 짓지 않은 아기들도 죽기 때문입니다.
계시록20:12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
20:13 바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니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20:14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0:13]바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니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계20:14]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1:8]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가증스런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술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시더라.
20:11 또 내가 큰 백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그의 면전에서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의 설 자리도 보이지 않더라.
이 마지막 심판의 장소를 보십시오..
이것에는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
이것은 성경의 가장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공평하게 심판을 받는 것 이것은 이전에 기록된
[요5:29]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
와 일치 합니다.
이 심판에서 사망에 던져지는 것이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아기들이나 양심대로 살았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심판을 받을 근거가 없습니다.
왜냐면 원죄가 기록된 것이 아니라 행위가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여지것 말한 바는 하나님께서 죄를 다루시는 가장 일반적인 하나님의 방침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선과 악을 알게 된후 선을 선택하는 사람보다는 대부분 악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롬7:23]내 지체들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나를 내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5]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므로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것을 바울은 죄의 법이라고 말합니다.
[롬7:21]그리하여 내가 한 법을 발견하노니, 그것은 내가 선을 행하고자 할 때 악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라.
이법을 쉽게 알수 있는 방법은 선을 행하고자 한다면 즉시 느껴질것입니다.
친한 친구가 잘 될 때 정말 시기하지 않고 기쁜맘으로 즐거워 하는가 맘속에 정말 탐심을 가지지 않은가
[약1:14]그러나 누구든지 자신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을 때 시험을 당하는 것이니
[롬2:15]그들의 양심이 증거하고, 그들의 이성이 송사하거나 서로 변명하여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여 주느니라.)
양심에 거슬린 일을 행하였다면 그것이 바로 죄의 법 아래서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많을수록 죄를 더 많이 짓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을수록 죄를 모르기 때문에 거의 적게 짓거나 없습니다.
[요8:9]그 말을 들은 자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아 늙은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맨 나중 사람까지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뜨더라. 그리하여 예수께서 혼자 남으시니 그 여인이 한가운데 서 있더라.
물론 이 자리에 아기가 있다면 그도 남아 있었겠죠...
왜냐면 아기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아기는 바로 선과악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죄나 의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아기들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고 이들은 죄가 무엇인지 알게되며 선과 악중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종종 선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많은 악을 선택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7:20]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의인은 땅 위에 한 명도 없느니라.
하여튼 죄를 지은 결과는 자신이 받는 것이 당연한 법칙입니다.
우리가 왜 다른 사람에게 범죄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심판을 받느냐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의 대부분의 죄는 다른 사람에게 짓지 하나님께 피해를 준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창9:6]사람의 피를 흘리는 사람은 사람에 의해서 자기의 피도 흘려지게 되리니, 이는 주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라.
우리는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엄청난 것으로 어느 피조물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다 사람에게 범하는 외부에 짓는 죄들은 하나님께서 지은 창조물에 대해 짓는 것이 되는 것이기에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더하여 인류 역사는 폭력과 억압의 역사였으며 이것은 거의 제대로 심판받은 적은 없습니다.
대부분 악인은 잘먹고 잘살다가 죽었고 의인은 대부분 박해와 억압 가운데 살다 죽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반드시 작든 크든 하나님께서 심판으로 정리를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마12:36]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말하는 어떠한 빈 말이라도 심판 날에는 그에 관하여 해명하게 되리라.
(더 황당한 교리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죄에 대해서 대신 벌을 받는다라는 교리다. 이거야 말로 웃기는 교리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닌 죄를 짓지 않은 다른 사람이 죄를 감당하는 것은 분명히 불공평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죄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2가지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죄를 범한 자가 그 형벌을 당하거나 갚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죄로 인하여 피해를 받은 사람이 그 죄의 댓가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한 예로 장발장이 주교의 은촛대를 홈쳐가고 나서 경찰에게 잡혀 그의 죄를 처벌하고 왔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대부분 장발장을 고발하고 은촛대를 뺏앗고 그를 감옥에 넣는 것이 일반적인 죄를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주교는 이러한 방법대신 그 은촛대를 장발장에게 주었다고 주장하여 그에게 은촛대를 주고 감옥을 가지 않도록 합니다.
이때 경찰이 주교에게 당신은 은촛대를 장발장에게 도둑질을 당한것인데 왜 주었다고 하냐면 주교를 고발하거나 장발장을 감옥에 쳐 넣을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수 없습니다.
자신이 장발장의 잘못 즉 도둑질로 인한 손해를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는 이처럼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감당하거나 죄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이 감당하므로 해결할수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기타 이슬람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한 인간이거나 천사라면 윗 글은 사실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아닌 제 3자가 그 죄를 감당하는 것은 가장 불공평한 처사인 것입니다.
하지만 제 3자가 아닌 당사자가 그 죄를 감당한다면 그것은 어느 누구도 불공평하다고 말할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죄는 궁긍적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한 댓가는 죽음과 심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에 죽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인간이 되셔야 했던 것입니다.
죄의 댓가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물론 이 죽음은 지옥에 가는 형벌이며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는 지옥에 가셨습니다.)
아담의 선과악을 알게하는 지식의 나무를 먹고 죽었을 때...
가장 큰 손해와 피해는 아담이나 그의 후손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성경구절은 생략하겠습니다. 관련구절
tp://cafe990.daum.net/_c21_/bbs_download?grpid=1FJCs&fldid=RLRM&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edge=F&contentval=0000Czzzzzzzzzzzzzzzzzzzzzzzzz&selectyn=Y이상입니다.
죄로 피해를 본 사람이 그 죄를 감당하겠다는 교리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교리입니다. 이것이 웃기는 교리입니까?
만일 자신이 죄를 지은 적이 없거나 있더라도 창조주께 대하여 범죄한 사실이 없다면 비웃거나 말거나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내가 창조주께 대하여 죄를 지은 죄인이라면 그 창조주가 그 죄를 감당했다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된 제 3자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되십니다. 왜냐면 죄인의 잘못을 의인에게 전가하기 때문입니다. 님의 주장처럼 웃기는 교리가 되는 것입니다.
[막2:17]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의사가 필요없지만 병든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니라.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회개에 이르게 하려고 왔노라."고 하시니라.
[딤전1:15]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바울은 당대의 율법대로 살아온 가장 훌륭한 바리새인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