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sin)와 죄들(sins)의 차이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흘기는 눈과 …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7:20-23)
"… 수군수군하는 자요 … 사형에 해당하다 …"(롬1:28-32)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약2:10)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욥25:4-6)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3)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1:8-9)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2)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5:14)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8-19)
죄, 죄들과 죄인
복음에 관하여 아주 낮은 방면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하겠고, 매일 저녁 한 걸음씩 전보하기 바란다. 첫날 저녁에는 우리가 빠뜨려 놓을 수 없는 주제 곧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제목인 죄, 죄들과 죄인에 대해 언급하겠다.
성경은 죄의 문제를 매우 중시한다. 이는 죄 문제를 분명히 볼 때만이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지 알려는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어떻게 죄가 우리를 만졌고 우리가 어떻게 해서 죄인 되었는가를 먼저 본 다음에야 하나님의 구원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 우리는 모든 사람이 「삼자경(三字經)」을 읽듯 죄가 무엇이고 죄들과 죄인이 무엇인지를 먼저 보아야 한다.
죄와 죄들의 차이
우리는 아주 쉽게 죄와 죄들의 차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죄와 죄들을 구분할 줄 모른다면, 당신은 구원에 대하여도 분명치 않을 것이다. 죄와 죄들을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받았을지라도 자기의 구원 여부에 대해 분명하지 못하게 된다. 성경에서 죄란 무엇이고 또 죄들이란 무엇인가? 간단한 정의를 내리겠다. 죄는 당신으로 범죄케 하기 위해 당신 속에서 당신을 지배하는 능력이고, 죄들은 밖으로 범한 낱낱의 죄들을 가리킨다.
죄란 무엇인가? 나는 죄의 뿌리, 죄의 근원 혹은 본죄, 원죄 등의 명사를 쓰기 원치 않는다. 이 명사들은 다 신학자들이 지어낸 것들이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단순한 것이 좋다. 여기서 우리는 체험에서 이것을 보기로 하자. 우리 속에서 우리를 사욕과 정욕의 길로 향하도록 강요하고 그런 자연적 경향을 갖도록 우리를 지배하고 강요하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한 죄이다. 그러나 우리 속에 우리를 강요하고 재촉하는 죄가 있을 뿐 아니라 밖으로 행한 낱낱의 죄들이 있다. 성경에서 죄들은 행위에 속하고 죄는 생명에 속한다. 죄들은 우리의 손과 발과 마음 곧 우리 온 몸으로 행한 바이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바 몸으로 행한 일들이다. 그러나 죄는 어떤가? 죄는 우리의 육체 안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일종의 율이다. 항상 우리로 범죄하고 악을 행하게 하는 이것이 바로 죄이다.
우리가 죄와 죄들을 잘 구분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의 말씀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는 죄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완전히 보여준다. 이 여덟 장의 성경에서 한 가지 놀라운 것은 1장부터 5장 11절까지에서는 죄(sin)에 대해 말하지 않고 죄들(sins)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 5장 12절부터 8장까지에는 죄들이 아닌 죄를 보여준다. 로마서 1장부터 5장 12절까지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로마서 5장 12절 이후는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어떠함 곧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죄는 우리의 생명이 어떠한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로마서 5장 11절 이전에서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았다. 이는 거기서의 문제가 당신이 살아나야 할 필요성에 있지 않고 당신이 범하는 낱낱의 죄가 어떻게 사함받을 수 있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5장 12절 이후의 둘째 단락에서 당신은 당신 속에서 강하고 힘센 어떤 것이 당신 몸의 지체의 율로서 당신을 끌어당기고 범죄케 함을 볼 수 있다. 이것에 대하여 당신은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
죄들은 우리의 행위이기 때문에 성경은 죄들이 사함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죄는 우리를 유혹하고 범죄케 하기 위해 억압하고 강요하는 것으로서, 이 죄에 대해서는 해방될 필요가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 번은 어느 선교사를 만났는데, 그는 대화하는 중에 죄 사함(the forgivenness of sin) 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서 성경 어디에 죄 사함(the forgivenness of sin) 이라는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주 많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한 군데만 보여달라고 말했다. 그는, "당신의 말은 없다는 뜻입니까?"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성경 전권에 죄 사함(the forgivenness of sin)이라고 말한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성경은 언제나 죄들의 사함(the forgivenness of sins)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함받는 것은 죄들이지 죄가 아닙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내 말을 믿지 않고 성경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는 내게, "니 선생, 참 이상하군요. 성경에서 죄들의 사함을 말할때마다 복수를 표시하는 「s」를 붙였군요"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함받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죄들임을 볼 수 있다.
죄들은 우리 밖의 것이기 때문에 사함이 필요하다. 또 하나 당신 안에 강하고 힘세며 당신으로 범죄하도록 재촉하는 그것은 사함이 필요치 않고 다만 그것을 벗어나면 된다. 당신이 그것의 권세 아래 있지 않고 그것과 관계를 갖지 않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죄들은 사함으로 해결되며 죄는 그 권세 아래 있지 않고 그것과 관계를 맺지 않음으로 해결된다. 죄들은 우리의 행위이고 낱낱의 행한 바이기 때문에 사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죄는 우리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한번도 죄의 사함을 말한 적이 없고 항상 죄들의 사함을 말한다. 동시에 죄들로부터 해방받아야 한다고 말한적이 없다. 나는 성경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음을 보장할 수 있다. 성경에는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있을 뿐 죄들로부터 해방된다는 말이 없다. 왜 그런가? 당신 속에서 당신을 억압하고 이끌어 범죄케 하는 그것에 대하여 당신은 다만 거기서 벗어나고 해방되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성경에서 분명히 구분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여러분에게 이것을 비교하여 제시해보겠다.
성경에서 죄는 육체 안에 있고 죄들은 행위에 속한다고 말한다. 죄는 우리 몸에서 원칙(생명의 원칙)이고 죄들은 우리 몸에서 사실(생명의 사실)이다.
죄는 지체 안에 있는 법이고 죄들은 사실적인 범죄요 실지로 행한 바이다.
죄는 우리의 어떠함과 관련되고 죄들은 우리의 행함과 관련된다.
죄의 범위는 생명의 범위이고 죄들의 범위는 양심의 범위이다.
(죄는 생명의 능력이고 죄들은 양심의 능력이다. 당신은 생명 안에서 죄의 지배를 받고, 밖으로 당신이 많은 죄들을 범할 때 양심 안에 참소와 불안함이 있게 된다.)
죄는 합일적인 것이고 죄들은 낱낱의 것이다.
죄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것이고 죄들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다.
죄는 해방을 필요로 하고 죄들은 사함을 필요로 한다.
죄는 성화와 관련되고 죄들은 칭의와 관련된다.
죄의 문제는 승리의 문제이고 죄들의 문제는 마음 속의 평강의 문제이다.
죄는 사람의 천성 안에 있는 것이고 죄들은 사람의 길에 있는 것이다.
비유로 말하자면, 죄는 나무와 같고 죄들은 나무에 달린 열매와 같다.
많은 경우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죄인을 빚진 사람에 비유한다. 우리는 빚을 지는 것이 아주 좋지 않은 일임을 알 것이다. 그러나 빚을 진 사람에게 있어서 빚을 진 것이 하나의 문제이나 그의 속에 빚을 지는 성질이 있는 것도 하나의 문제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 빚을 지다 보면 남의 돈을 빌어 쓰고서도 그것을 마음에 두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남에게 빚을 질 수 없고 남에게 돈을 빌 수 없다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누구에게서 이삼백 원 똬는 이삼천 원을 빌렸는데 나중에 갚을 능력이 없어서 친척이나 형제 혹은 친구나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그 빚을 갚아 주었다 하자. 그런데도 삼사 일 후에 또 속으로 남에게 빌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당신은 돈을 비는 것과 빌고자 하는 마음은 별개임을 볼 수 있다. 밖에서 비는 것은 성경에서 말한 죄들과 같다. 당신의 습관과 성질은 걸핏하면 돈을 빌려고 하는데, 그러한 돈을 빌려는 마음은 죄인 것이다. 그는 누가 빚을 갚아주었다고 해서 돈을 비는 일을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빚을 갚아주는 사람이 있으므로 더욱 돈을 빌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범죄(범죄한 사실)를 처리하실 뿐 아니라 동시에 우리 속의 죄로 향하는 마음도 처리하신다. 우리는 죄들의 처리가 중요할 뿐 아니라 죄의 처리도 중요함을 본다. 우리가 이 두 방면을 보아야만 우리의 구원이 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가 죄인인가
이제 우리는 누가 죄인이냐는 질문을 하겠다. 오늘 여기에 있는 형제 자매들 중에서 어떤 이는 15년이 된 것을 안다.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질문한 것은 「인간의 시작」(人之初:삼자경의 첫 어구)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체 어떤 사람이 죄인인가? 나는 많은 사람들이 범죄한 죄인이라고 답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웹스터 대사전을 찾아본다면 「범죄한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한 것을 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성경을 읽어본다면 당신은 그 풀이를 제해버릴 것이다. 범죄한 사람이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 범죄하는 것이다. 」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 자매들이 로마서를 읽어 보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 사람이 죄인인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바울이 3장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 것을 들었으리라 믿는다. 하나님이 의인을 찾으신다면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깨닫고 그분을 구하는 이를 찾았지만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하셨다. 사람은 다 거짓말장이요 바른 길을 떠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이다. 조심하라! 말을 속단하지 말라. 로마서 3장에서 죄인에 대해 말했는가? 만일 로마서 3장에서 「죄인」이라는 단어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할 것이다. 누가 찾아낼 수 있는가? 로마서 3장에는 「죄인」이라는 단어가 없음을 기억하라. 어떤 사람은 로마서 3장이 사람의 범죄를 말하기 때문에 사람이 죄인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죄인을 말하는 장은 로마서 3장이 아닌 5장이다. 그러나 다음 사실을 구분하기 바란다. 로마서 3장은 범죄 문제를 말하고, 5장은 죄인의 문제를 알려준다. 로마서 3장은 다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하고, 로마서 5장에 이르러서야 어떤 사람이 죄인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아담으로부터 태어난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이것은 로마서 5장 19절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이다. 만일 누가 다비의 새 번역 영어 성경(안타깝게도 워치만 니는 다비의 새번역영어성경을 언급함 - 참고)을 갖고 있다면, 「죄인이 된 것은」이라는 말을 그가 「죄인들로 조성된(have been constituted sinners) 것은」이라고 번역한 것을 볼 것이다. 영어단어 「constitution」는 「조성」이라는 뜻이다. 우리 모든 사람은 조성에 근거하여 죄인이다. 이력서를 쓸 때 필수적으로 적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본적이고 다른 하나는 직업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의 본적은 죄인이고 우리의 직업은 범죄하는 것이다. 우리의 본적이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하든 범하지 않든 우리는 죄인이다.
이번에 광주(廣州)에서 형제들과 성경 공부를 할 때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죄인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종류는 범죄한 죄인이고 다른 한 종류는 도덕적인 죄인이다. 범죄한 죄인이든 도덕적인 죄인이든 다 죄인이다.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난 자는 다 죄인이라고 하신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아담으로부터 태어난 사람이라면 당신은 죄인이다. 만일 당신이 범죄했다면 당신은 범죄한 죄인이라 불리우고, 범죄하지 않았다면 더 정확하게 말해서 적게 죄를 범했다면 당신은 도덕적인 죄인 혹은 죄를 적게 지은 죄인이라 불리우게 된다. 만일 당신이 고상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고상한 죄인이다. 만일 당신이 자신을 성결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성결한 죄인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지 죄인이다. 오늘 사람들은 범죄한 사람만이 죄인이고 범죄치 않은 사람은 죄인이 아니라는 큰 과오를 범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당신이 범죄하지 않든 당신이 사람이라면 죄인인 것이다. 당신이 아담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죄인인 것이다. 사람은 범죄함으로 죄인 된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범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구들이여,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 우리는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죄인인 것이다. 우리는 죄인이 될 필요가 없다. 한번은 진 형제님과 대화하는데 그 앞에 보온병이 있었다. 그는 내게, "이것은 보온병인데 만일 이것이 보온병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어찌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이미 보온병이기 때문에 보온병이 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신이 이미 그런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죄가 사함받을 수 있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임을 기억하라. 우리는 자신을 사함받은 죄인이라고 칭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고 믿는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하면 마치 복음을 모르는 사람같이 여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바울은 자신의 죄가 사함받지 않았다고 말한 적은 없으나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한 적은 있다(딤전1:15 에 보면 I was chief가 아닌 I am chief인 현재형임을 주목하자 - 참고). 당신은 이것들의 차이를 볼 수 있는가? 만일 당신이 바울에게, "바울 형제님, 당신의 죄가 사하여졌나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겸손한 체 하면서 "죄 사함을 받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죄인이라고 겸손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가 자기 몸에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를 뒤집을 수 없듯이 아담 안에 있는 그의 위치도 뒤집을 수 없는 것이다. 비록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은혜를 받았지만, 죄를 제거하는 것은 오늘 하나님이 아직 이루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죄인인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러서야 죄의 문제가 완전히 처리될 수 있다. 이것은 완전한 구원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내 말을 오해하지 말라. 이것에 대해서는 며칠 후에 다시 보기로 하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는 이 사실은 분명하고 정확히 보아야 한다. 당신은 범죄하든 하지않든 사람이라면 죄인인 것이다. 복음을 들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얼마나 범했는가와 죄를 아주 조금 범한 것으로 다툰다. 그러나 하나님 면전에서는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아담 안에 있느냐의 문제밖에 없다. 아담 안에 있다면 당신은 죄인이다. 만일 죄인이라면 그 사실 하나로 족하다.
그럼 왜 로마서 1, 2, 3장에서 바울은 사람들이 많은 죄들을 범한 것을 알려주는가? 이 몇 장들은 죄인이라면 범죄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로마서 앞의 3장은 범죄로써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로마서 5장은 죄인이 어떤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번 여행 중 어느 날 밤 강서(江西)의 길안(吉安) 이라는 곳에서 경찰의 일을 하는 한 형제를 만났다. 그는 내가 주님의 일을 하는 전도자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곧 내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그가 믿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 증거를 보여주어야 했다. 나중에 많은 증거를 보여주자 그는 나를 믿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벌써부터 죄인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우리가 죄인이라는 증거가 없었던 것 같다. 로마서 앞의 3장은 당신이 죄인인 것을 증명해준다. 당신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근거를 찾아내어 보여준다. 5장은 당신이 죄인이라고 말한다. 앞의 세 장은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해준다.
한 가지 일을 더 말하겠다. 복건(福建)에는 과거에 강도요 유괴범이었다가 기독교 교우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 비록 그들이 강도짓을 하였으나 그래도 양심은 조금 있었다. 목사나 전도사를 붙잡았을 때에는 돈을 요구하지 않고 그냥 돌려 보냈다. 그러자 붙잡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교회의 목사 또는 전도사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그들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은 곧 누가 자신을 목사라고 하면 십계명, 주기도문, 팔복(八福) 등을 외워 보게 하는 것이었다. 외울 줄 아는 사람은 목사로 여기고 돌려 보냈다. 처음에 이것을 들었을 때 나는 매우 흥미롭게 느꼈다. 목사인가 아닌가에도 증명이 필요하다니. 강도는 잡힌 사람에게 그들이 목사인지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당신이 죄인인가를 증명해 보여주신다. 만일 증거가 없다면 당신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잊어버릴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로마서 1, 2, 3장은 당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많은 죄들을 나열하였다. 당신이 많은 죄들을 범한 것은 당신이 죄인임을 증명해준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 당신은 그런 죄들이 있어야 죄인이라고 잘못 생각하지 말라. 그렇지 않다. 당신은 벌써부터 죄인이었다. 그러한 죄들이 있은 후에야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초를 분명히 닦아 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 길에 나가서 혹은 사람들 집에 가서 각 사람의 손을 붙들고,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고 불을 지른 적도 없는 그가 어찌 죄인이냐고 말할 것이다. 당신은 그에게, "좋습니다. 당신은 강도짓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은 죄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만나든 그가 죄인이라는 것을 단정할 수 있다.
신약 성경 전체에서 오직 로마서 5장 19절만이 누가 죄인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신약 성경 다른 곳에서는 죄인이 어떤 일을 하였는가를 말해주나 오직 이 곳에서만은 누가 죄인인가를 알려준다. 죄인은 수천만 가지의 일을 저지를 수도 있고 한 가지 일도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담에게서 난 자는 다 죄인인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한국복음서원) - 웟치만 니(Watchman Nee, 1903-1972) -
-은혜와 속죄 홈피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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