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이란?
먼저 구원의 확신을 말하기 전에 왜 구원의 확신이 필요한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행17:31]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선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의로 세상을 심판하실 한 날을 정해 놓으시고,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시어 모든 사람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셨음이라."고 하니라.
딤후3:14 그러나 너는 네가 배운 것과 확신한 것에 꾸준히 거하라. 네가 누구에게서 배웠는가를 알며
3:15 또 어릴 때부터 네가 성경을 알았으니, 그 성경은 너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할 수 있느니라.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니라.
[딤후1:12]그런 연유로 내가 이러한 고난을 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믿은 분을 알고, 내가 위탁한 것을 그 날을 대비하여 그 분께서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은 몇차례에 걸쳐서 그리스도인이 확신안에 거하여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위 구절에서 말하듯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기 위한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확신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수 없다.
복음을 전하든 성경을 가르치든 그리스도인으로써 고난을 감수를 하든..
자신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말할 수 있겠는가?
즉 구원의 확신은 성장을 위한 첫 걸음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 종종 구원의 확신으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얼마되지 않은 분들 뿐만 아니라 교회에 오래 다녔던 사람들도 이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는 분들이 많다.
심지어 교회에 몇십년 다니셨던 분들도
예수님을 믿으세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 믿는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구원의 확신 있으세요? 라고 물으면 당황하거나 확신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흔하다.
마치 믿음과 구원의 확신은 별개로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 이유는 몇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복음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실제로는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이 말은 정확하게 말하면 정답은 아니다.
[눅4:41]또 마귀들도 많은 사람에게서 나가며 소리질러 말하기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하자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고 그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그 마귀들이 주가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더라.
[약2:19]네가 한 분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니 잘하는 것이라.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
즉 마귀들 같은경우 예수님이 그리스도인것과 하나님이 한분이심을 믿고 떠든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다.
지금도 수많은 교파들이 있고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당수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신흥 종파와 교주를 중심으로 믿는 수많은 교회들이 그러할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다면 "복음"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간단히 복음에 대해 말하면.
복음의 정의는 간단하다.
고전 15:2 만일 너희가 내가 전한 복음을 굳게 잡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복음을 통하여 너희도 구원받은 것이라.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15:4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의 구원은 이 내용으로 받는다.
이 구절을 믿지 않는 교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구원의 확신을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 복음을 바꾸기 때문이다.
[갈1:7]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너희를 교란시키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개시키려는 것이라.
[갈1:8]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이단들은 대부분 구원의 확신에 대한 가르침이나 교리가 없다.
왜냐면 만들 자신의 신도들이 구원의 확신을 한다면 교주의 말이나 자신들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교회의 수입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종교에서 구원의 확신을 말하는 종파는 거의 없다...
자신들의 신도들이 궁극적인 목적(구원, 천국등)을 자신의 교주나 교회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쉽고 간단히 받는다고 가르치친다면, 교주의 말이나 교회에 잘 출석하지 않을테고 헌금도 잘안내고 봉사도 잘 안하여 조직이 유지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급속히 증가하는 이단 교회들은 교인들에게 물질이나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헌금을 많이 내야 구원이나 상급이 보장된다던가 자신들의 회원을 증가 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과 많은 희생이 요구하기도 한다.
[갈2:4]이는 거짓 형제들이 몰래 들어온 까닭이라. 그들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진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가만히 들어와 우리를 노예로 삼고자 함이더라.
즉 구원의 확신을 하지 못하는 많은 경우 대부분 복음외에 다른 것을 믿고 있다.
이것이 변개된 복음이다.
이 변개된 복음은 여러가지 형태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 하는 모든 일체의 종교 행위"를 말한다.
최소한 구원을 받는 믿음(복음을 믿는 믿음)은 행위가 포함된 믿음이 아니다.
수 많은 이들이 잘못된 복음과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하지 못한다.
다른말로 표현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가 용서된 것을 믿는 것이 복음이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것이 복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종교행위로 통하여 구원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할 수 없다.
아니 구원을 받지 못한다.
두번째는 구원은 받았으나 의심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초신자 같은 경우 아주 흔하다..
처음 복음을 이해하고 구원을 받아 잠시 기쁨으로 충만한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값없이 의롭게 되고 하늘 나라의 보장을 얻었다는 것에 대해 아주 기뻐한다.
하지만 얼마후 고의나 실수로 죄를 짓게 되고 이것으로 인하여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심지나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한 내가 이런 짓을 하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즉 어떻게 구원받은 사람이 이런 행위를 하는가 라는 의구심에 시달리는 것이다.
의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거나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옥의 실체에 대해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경우..
혹시라도 내가 지옥에 가면 어쩌나 라는 두려움과 겹쳐서 구원을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복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믿었던 사람의 경우라면 결코 복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정한다 할지라도 그가 구원을 잃은 것은 아니다.
왜냐면 구원은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거듭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한 가지 예로 든다면 어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기억을 상실했다고 하자..
그는 이전에 믿었던 복음과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
이 사람이 구원을 잃은 것인가.
아니다.
즉 구원을 받은 것과 구원의 확신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구원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이다.
내가 우리 부모님이 나를 때리고 벌한다고 내가 우리 부모님을 의심하고 심지어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자식이라는 사실은 변할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 있는 사람들은 복음이라는 기초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구원은 나의 공로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공로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공짜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항상 무엇인가를 얻고자 할때 값을 치루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 호의를 배풀면 그것에 대해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아무 댓가 없이 1억이란 돈을 내 통장에 입금을 해주었다고 가정하자..
처음에는 아주 기뻐하다가 그 돈에 대해 의심한다.
이 돈을 다시 뺏어 가거나 아니만 무엇인가 댓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구원도 그러하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다가.. 내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나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하나님의 호의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이 구원을 뺏아 가실것 같다.
이런 경우 구원을 의심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들은 다시 구원에 대해 다시 정리하게 되고 구원의 확신을 하게 된다.
왜냐면 의심하는 기간은 괴롭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결하려 들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예정론으로 인하여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예정론을 이루는 교리중 하나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창세전에 구원받을 사람과 받지 못할 사람은 이미 예정되었다는 교리가 있다.
복음의 모든 가르침은 받아 들이고 믿는다.
그런데 내가 예정되었는지 예정되지 않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못한다.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은 예정되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고 죽었는데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 너는 예정되지 않았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런 경우 참으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예정론은 이미 문제가 많은 가르침이라는 것은 앞서 설명했다.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예정론을 믿게 될 경우 이들은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기 쉽다.
그래서 수많은 장로교인들 중에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복음을 전할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들은 복음을 전하기 보다는 교회에 데리고 나오면 알아서 구원을 받을 사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교회에 나오면 복음을 접할 기회가 생기고 그로인하여 구원받을 경우는 많다.
하지만 교회에 나온다고 예정이 된것이거나 자동으로 구원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죄에 대해,심판에 대해,구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는 아무리 교회를 오래다녀도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만일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예정론으로 인하여 군인이 무장해제 당하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단 확장에는 기여할수는 있지만 진정한 복음의 전파는 기대하기 어렵다.
즉 대부분 구원은 "죽어봐야 안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예수님의 부활을 봐야 믿겠다"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스스로 입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못하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구원은 최선을 다해 달려 결승점에 도착해야 주는 면류관이 아니다.
구원은 경주장의 선수의 자격을 얻는 것이다.
자신이 경주장의 선수인지 구경꾼인지도 모르고 신앙을 생활을 한다는 것은 정말 한탄할 일이다.
구원의 확신을 한다고 구원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마귀와 자신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생명이 있는자는 그 생명으로 인하여 무엇인가 드러나게 되있다.
구원받은 이를 아는 방법은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뒤 그가 말씀을 찾느냐를 확인할 수 있다.
구원받은 사람이 전혀 말씀에 관심이 없거나 궁금해 하지 않는다면 그는 출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2] 갓난 아기들로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 이는 너희가 그것으로 인하여 자라게 하려 함이니라.
거듭남이란 출생은 그 변화는 급직적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진적인 것을 수도 있다.
어떤 이는 개과천선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 보다는 가치관의 변화가 가장 크다.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 세계와 영원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믿음은 볼수 없는 것을 볼수 있게 하고, 미래의 일들을 알게 한다.
예수님의 영은 예언의 영이다.. 그 영이 내 안에 거하게 된다.[요한계시록 19:10]
이로 인하여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인지..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알게된다.
기존 교회에서는 구원의 확신을 하는 사람을 교만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얼마나 잘 났다고 구원을 확신해??~~
하지만 성경을 조금만 정확하게 알게 된다면.. 오히려 구원을 의심하거나 구원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례하고 교만한지 알게 될 것이다.
이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의 보혈과 죽으심으로는 부족하고
그 위에 자신의 종교행위와 선행등 자신의 의와 순수함을 더하여야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것보다 더 교만함이 어디있겠는가
아주 완벽하게 만들어진 요리에 양념으로 똥을 얻어야 완성이 된다는 것과 같다.(빌3:4-8)
이상 몇가지 구원의 확신을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 언급했다.
물론 이 외에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의 기본 단계이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 많은 것을 의심할수 있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태어났다는 것과 살아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거듭남도 그러하다. 우리는 어떻게 거듭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태어났고 살아 있다는 것이다.
요3:7 내가 너에게 '너희는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한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3:8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고 하시니라.
구원의 확신은 자신감이나 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가느냐? 의심하고 살아가느냐의 문제이다.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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