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거짓을 구분함

[스크랩]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었인가?

무형11 2015. 3. 3. 15:00
[요3:5]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경의 난해 구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첫번째로 확대해석을 하면 안됩니다.
이 구절에서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이라고 하셨지..
침례와 성령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침례가 물에 들어가서서 받는 것이기는 하지만 물=침례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수하는 물을 이라고 주장하거나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성수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침례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침례를 말한다면 세례를 주는 장로교나 감리교는 한 사람도 거듭나지 못한 것이 됩니다.
어떤 분이 침례=세례라고 주장한다면 왜 침례가 세례가 되었는지 교회사를 좀더 공부하셔으면 합니다.
 
두번째로 성경에서 물이란 단어가 어떻게 쓰였는지 찾아봐야 합니다.
성경에서 물이란 단어를 모두 검색해 보면
 
1.궁창 위의 물
[창1:2] 땅은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의 표면에 있으며,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에서 거니시더라.
[시148:4] 너희 하늘들의 하늘들과, 하늘들 위에 있는 너희 물들아, 그를 찬양하라.
 
2. 바다의 물
[창1:20]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들은 생명이 있는 생물들을 풍성히 내고, 땅 위 하늘의 넓은 창공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며
 
3. 침례의 수단으로서의 물
[행11:16]그때에 내가 '요한은 정녕 물로 침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는 주의 말씀을 기억했노라.
 
4. 민족들
[계17:15] 또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네가 본 그 창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들과 무리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라.
[전11:1] 너는 네 빵을 물 위에 던지라. 이는 여러 날 후에 네가 그것을 찾을 것임이라.
 
5. 생명을 주는 물
[계22:17] 또 성령과 신부가 말하기를 "오라."하더라. 듣는 자도 "오라."말하게 하고 또 목마른 자도 오게 하며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게 할지어다.
 
6. 성령
[요4: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그에게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시니라.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씀한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흐르리라."고 하시니
 
7. 말씀
엡5:26 이는 그가 교회를 말씀에 의한 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시고 깨끗케 하사
That he might sanctify and cleanse it with the washing of water by the word,(kjv)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자라게 하셨느니라.
 
8. 물로 오신 예수님
[요일5:6]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시니, 물로만이 아니라 물과 피로니라.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요일5:8] 또 땅에서 증거하는 것도 셋이니, 영과 물과 피요, 이 셋은 하나 안에서 일치하느니라.
 
 
이상 몇가지로 성경에서 나오는 물을 찾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이 성경에서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 이전에 쓰여진 내용으로 은혜 복음으로 재해석하여 기록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요한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시대는 예수님의 죽음 이전으로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보혈로 죄사함을 받아 구원받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즉 요한복음은 교리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교리서가 아닌 내용에서 교리를 찾는 일은 우물가에서 숭륭찾는 일보다 더 어리석은 짓입니다.
 
즉 요한복음에 있는 내용은 교리가 아니므로 교리로써 적용하면 안되고 설령 교리로 적용한다 하더라도 교리서인 바울 서신과 일치하는 것을 찾아서 일치하는 내용만 적용시킬수 있습니다.
특히 로마서나 갈라디어서에서 말하는 구원과 거듭남에 일치하는 교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기초적인 교리라 생략하겠습니다.)
 
먼저 "침례"는 행위이기 때문에 바울의 가르침에 의해 해당이 안됨을 알수 있습니다.
 
[갈2:16]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
 
갈 1:14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내가 크리스포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가운데 아무에게도 침례를 주지 아니하였음이라.
1:15 이는 아무도 내가 내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함이라.
 
궁창 위의 물이나 바닷물이나 민족들도 상식선에서 해당 없겠죠.
 
그렇다면 몇가지로 축약됩니다.
 
성령, 말씀, 예수님 이 세가지로 함축됩니다.
 
말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을때 이 "물"을 "성령"이나 "말씀"이나 "예수님"으로 하여도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난해 구절에 있어서 억지로 이것이라고 주장하기 보다는 기초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 것들을 찾아
영적으로 적용한다면 큰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첨가하여 이러한 구절들을 해석함에 억지로 적용하여 침례나 기타 선함, 종교 "행위"로 해석한다면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을 전하여 저주가 임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갈1:8]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네째로 요한 복음이 기록된 시기와 신약인지 구약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왜냐면 이 구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기전인 구약시대에 한 말씀입니다.
(신약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시작된다는 내용도 기초교리 이기 때문에 설명 생략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속하여 죽으심을 믿고 은혜로 구원받는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만일 예언적인 말씀으로 적용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예수님이 죽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거듭난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시 거듭남에 관한 다른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벧전1:3]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송축하리로다. 그 분은 그의 풍성하신 자비하심을 따라 죽은 자들로부터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begotten us again) 산 소망을 갖게 하셨으며
 
[벧전1:23]너희가 거듭난 것(born again)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딛3:5]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에 의하지 않고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 중생(regeneration)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상의 구절에서 보듯이 우리들이 생각하는 침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하나님의 말씀""성령""자비하심"등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전한 은혜 복음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거듭나는 것에 대하여 정리하겠습니다.
 
[요6: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고후3:6]또한 그 분은 우리로 새 언약의 능력있는 일꾼이 되게 하셨는데, 이는 법문으로 한 것이 아니고 영으로 한 것이니, 법문은 죽이고 영은 살리기 때문이라.
 
[고전2: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롬8:15]너희는 다시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 되는 영을 받았으므로 그에 따라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이상 구절에서 보듯이 다시 태어는것, 즉 거듭나는 것은 "영"(spirit)입니다.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이 있다는 것은 사람의 삼중성에 관하여 제가 올린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즉 우리는 값없이 구원받는 복음을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부터 성령을 받으며 이때 우리의 죽은 영은 다시 살아나게 되어 양자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됩니다.
 
 
 이상 요약하면..
첫번째로 구절이 신약(예수님의 죽으심 이후)의 구절인가 살펴봐야 합니다.
두번째로 성경에서 정의하는 단어의 의미를 모두 찾아봐야 합니다.
세번째로 가장 합당한 바울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단어로 적용시킵니다.
 
가능하면 사사로운 해석은 배제해야 하여야 하는데 왜냐면 논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즉 사사로운 해석은 함부로 주장하거나 가르쳐서는 안됩니다.
 
[벧후1:20]먼저 이것을 알지니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운 해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벧후3:16]그의 모든 편지에서도 이런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어 무식한 자들과 견고하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출처 : 하나님의 경륜
글쓴이 : 나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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