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가?
~~~~~~~~~~~~
글 http://cafe.daum.net/dispen/RHNp/195에 대한 반론
나눔님의 윗 본문글의 요지가 <야고보서는 유대민족에게 해당하는 서신서이다> <유대인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그리스도인과는 다르게 !! 율법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로 파악됩니다.
제 견해는 야고보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과 구별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된다고 봅니다. 또 야고보서의 행위강조는, 유대인의 <율법에따른 행위>를 강조한 것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마땅히 따라와야할 행위>인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야고보서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유대인이방인과는 하등의 상관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알고 순종해야할 거룩한 새법--생명의 성령의 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유대인만을 대상으로한, 유대인의 서신서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고 순종해야할, 모든 그리스도인의 서신서입니다!!
서신서 처음에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보내졌다하여, 이스라엘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가 수신대상이 로마에있는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됩니까??? 로마서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 처럼...야고보서도 모든 그리스도인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
반론에 대한 답변 :
위글에 대한 반론은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에서 야고보서를 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많은 건전한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조차도 야고보서의 유혹을 떨쳐낼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면 바른 교리와 성경을 많이 알아도 그들의 행위가 변화가 없음을 느끼는 순간
야고보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성화에 관한 내용"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떠한 아름다운 해석보다도 사실 그대로 전하는 바를 먼저 깨닫고자 합니다.
먼저 로마서를 살펴보면
로마서 1:7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구원)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분명히 바울이 편지한 대상은 기록된 대로 "구원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였습니다.
로마서 16장에 보시면 로마에 있는 많은 문안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름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것을 믿고 우리에게 적용하는 이유는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올바른 교리를 가르치고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하는지는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골로세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이 편지를 라오디케아인들에게 읽게 하라고 하고 라이디케아에 보낸 편지를 골로서에 있는 성도들에게 읽게 하라고 말합니다.
왜 일까요 자신의 편지는 그 대상이 누구든 일관성있게 "구원받은 이방인들" 이였기 때문입니다.
[골4:16]이 편지를 너희 가운데서 읽고 나면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케아에서 온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바울은 단한번도 구약의 십계명이나 행위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거나 다른 사도들의 편지를 읽으라고 권거하거나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음 믿음이라고 말한적인 없습니다.
바울은 누누히 말하지만 이방인들의 사도이고 은혜복음을 전하기 위해 특별히 선택받은 자입니다.
야고보서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널리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사도행전 초기(행위 구원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어떤 사람들은 야고보서의 쓰여진 시기를 바울서신 이후로 주장하기도 함)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쓸때 보편적인 편지의 대상을 구원받은 이방인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로마나 고린도에 있는 구원받은 이방인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입니다.(그 당시에 이방인 교회는 없었음, 설령 바울서신 이후 야고보가 쓰여진 것이 옳다고 하여도 서두에서 이미 그 대상을 제한하였음)
자격의 문제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글을 쓸때 글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의 자격입니다.
한 예로 어떤 사람이 몸이 아파 병원에 갔는데..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처방전을 써주며 이러한 약을 먹으라고 한다면
아무도 그 처방전에 따라 약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앞서 여러 글을 통하여 이방인들의 사도는 바울이라고 강조한 점을 알려드렸습니다.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사도바울 한 사람 뿐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몇구절 살펴보면
[행13:47]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내가 너(바울)를 이방인들의 빛으로 세웠으니, 너는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라.' 하였음이라." 하더라.
[롬11:13]내(바울)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들의 사도이기에 나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나니
[갈2:8](베드로에게 역사하셔서 할례받은 사람들의 사도 직분을 주신 그 분께서 나(바울)에게도 역사하시어 이방인들을 위한 직분을 주셨느니라.)
[갈2:9]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고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바울,바나바)가 이방인들에게로 가고 그들은(야고보, 베드로, 요한) 할례받은 자들에게로 감이라.
[딤전2:7]이를 인하여 내(바울)가 전도자와 사도로 지명을 받았으며,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노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바울) 이방인들의 선생이 되었노라.
[딤후1:11]이를 위하여 내가(바울) 이방인들의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느니라.
[롬15:16] 나(바울)로 이방인들을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게하셨으니....
[살전2:16] [행13:46][행14:27
이상 수 많은 구절들을 통하여 사도 바울만이 이방인들 사도임을 아주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어떠한가요?
즉 그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적이 없었고 항상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서에서 야고보가 예수님께로 부터 받은 명령입니다.
마10:5 예수께서 이 열둘(야고보)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다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막7:27]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이스라엘)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하느니라. 그 자녀들(이스라엘)의 빵을 가져다가 개들(이방인들)에게 던져 주는 것이 옳지 않도다."라고 하시니
부활이후 민족적인 복음을 전한 스테판을 이스라엘이 죽인 후 예수님께서 환상을 통하여 베드로에게 불결한 짐승들 즉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질겁을 하며 절대 그럴수 없다고 말합니다.
행10: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갖가지 네 발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있더라.
10:13 그런데 한 음성이 그에게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 먹으라." 하더라.
[행10:14]베드로가 말하기를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나는 결코 속되거나 불결한 것을 먹은 적이 없나이다."라고 하니
행10:28 그(베드로)가 그들(이방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도 유대인이 다른 민족과 교제하거나 친근히 하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가를 아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시기를 어느 누구(이방인)도 속되거나 불결하다고 일컫지 말라고 하셨느니라.
하지만 여전히 베드로를 제외한 11사도는 이러한 내용을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방인들의 사도로 선택받은 바울을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였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을 잘 살펴보면..
예루살렘에 거하였던 야고보의 교회를 한번 살펴보면, 이들은
사도행전
15:1 유대에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형제들을 가르치며 말하기를 "너희가 모세의 율례에 따라 할례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노라."고 하더라.
15:2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의견 차이와 논쟁이 일어나니, 형제들이 바울과 바나바와 그들 중에서 몇 사람을 더 선정하여 이 문제를 규명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가도록 하니라.
--> 여기서 "적지 않은 의견 차이와 논쟁"이란 말 그대로 엄청난 영적 싸움이였습니다. 바울은 "할례를 받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거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온유하게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엄청난 저주를 했습니다.
[갈3:10]율법의 행위로 난 자들은 누구든지 저주 아래 있느니라.
[갈1:8]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갈1:9]우리가 전에도 말한 것같이 지금도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으리라.
15:3 이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페니케와 사마리아를 경유하며 이방인들의 개종을 설명하니 모든 형제가 크게 기뻐하더라.
15:4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을 설명하니라.
15:5 그러나 바리새파에서 믿는 몇 사람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그들(믿는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니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권고하라."고 하더라.
--> 앞에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예루살렘 교회에 믿는 몇 사람은 중에 믿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15:6 그때에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려고 함께 모였는데
15:7 많은 논의가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형제 여러분, 당신들이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우리 가운데 택하시어 나의 입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느니라.
---.> 왜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사도들과 성도들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해야 했을까요 이들은 이방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게 되는 하나님의 계획을 여전히 몰랐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계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5:8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행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증거하시어 성령을 주셨으며
15:9 우리와 그들 사이에 어떤 차이도 두지 아니하셨으니,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결케 하셨느니라.
15:10 그런데 이제 너희(유대 교회) 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의 조상이나 우리도 감당할 수 없었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걸려고 하느냐?
15:11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믿으며, 그들도 마찬가지니라."고 하더라.
---> 이때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베드로가 일어나 정확한 복음을 말합니다.
15:12 그러자 모든 무리가 조용해지며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통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표적들과 이적들을 행하셨는가를 설명하니 듣더라.
15:13 그들이 말을 끝내고 조용해지자, 야고보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형제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15:14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한 백성을 취하시려고 처음에 어떻게 그들을 찾으셨는가를 시므온이 설명하였으니
--->이제서야 야고보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역사를 이해하게 됩니다.
야고보서가 바울의 사역 전에 쓰여졌음에도 많은 교파에서는 바울의 사역 이후로 주장하는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볼때 야고보가 만일 야고보서를 쓰기 전에 바울에게 배웠던 이방인들을 향한 계시를 알았더라면 절대 야고보서의 편지 대상을 유대에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받은 성도들이라고 했을 것입니다.
즉 야고보는 여전히 유대인들의 왕국복음만을 알고 재림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시기에 유대인들을 세우기 위해 야고보서를 쓴 것입니다. 앞으로 이시기는 한번더 반복되는데 바로 대환란 시기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다시 유대십사만사천명 등 다시 하나님의 계획이 이방인들에게서 유대인들로 바뀌어져 있음을 알것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즉시 재림하실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쓰여진 서신으로 다분이 유대적이며 행위가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즉시 재림하는 시기 는 앞으로 대환란 기간하고 유사합니다. 따라서 대환란시대는 행위가 없는 믿음은 정말 죽은 믿음이 됩니다.
즉 내가 믿음이 있다하여 집승에게 경배한다면 그는 결코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할수 없습니다.
[계13:10]포로로 삼는 자는 그도 포로가 될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그도 칼에 죽게 될 것이라.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느니라.
[계14:12]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행위)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믿음)이 있느니라."고 하더라.
대환란 기간에 있는 믿음은 부활을 믿는 과거적 믿음이 아니라 재림을 믿는 미래적 믿음입니다.
과거적 믿음은 행위를 요구할수 없지만 미래적 믿음은 행위가 요구 됩니다.
15:15 이것은 선지자들의 말과 일치된 것이라. 기록된 바와 같이
15:16 '이 일 후에 내가 다시 돌아와서 쓰러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울 것이며, 또 거기에 파괴된 것들을 다시 세워 일으키리라.
15:17 그리하여 남은 자들로 주를 찾게 할 것이며, 또 내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방인들도 그러하리라.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주가 말하노라.
15:18 세상의 시작부터 그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께 알려졌느니라.'고 하느니라.
15:19 그러므로 내(야고보) 판단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을 우리가 괴롭히지 말고
15:20 다만 그들에게 글을 보내어 우상으로 더럽혀진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삼가하게 하자는 것이라.
하지만 여전히 야고보는 이방인들 구원받는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유대인들이 최소한 지켜야 하는 행위를 이방인에게 지키라고 말합니다.
만일 야고보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주장하면서 당신이 제사 음식이나, 순대, 선지국을 먹는다면 당신의 믿음은 죽은 믿음임이며 또한 이 믿음은 당신을 구원할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면 이 말은 야고보서를 썼던 야고보가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약2:14]나의 형제들아, 만일 누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면서 행함이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바울은 구원받은 이방인들에게 야고보의 말을 무시하고 반박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10:25 고기시장에서 파는 것은 무엇이나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 당시 고기시장에서 파는 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것들이 대부분이였음)
여기서 바울이 오기 전까지는 야고보가 수장으로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는 앞서 내용처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거나, 적어도 구원받은 이후에는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초기 하나님의 교회는 유대인들 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 유대인들은 보편적인 율법(안식일, 할례 등)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규레였습니다.
야고보는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고 바울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함부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으며 예수님이 처음 명령하신대로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마10:5]예수께서 이 열둘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야고보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도들에게 이방인들은 복음을 전할 대상이 아니였습니다.
[갈2:9]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고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바울)가 이방인들에게로 가고 그들은(야고보) 할례받은 자들에게로 감이라.
윗 구절이 아직도 앞서 말씀하신 "유대에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가 "믿는 이방인들"이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야고보는 복음을 전했던 이들이 영적 할례받은 자들(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하시렵니까?
복음서와 사도행전 중반까지 잘 읽어보십시요..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메시아로 오셨고 전하셨던 복음은 왕국복음이였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도 한동안 유대인들은 왕국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왕국은 유대인들의 거부로 연기되어지고 창세 전부터 숨겨졌던 인종의 차별이 없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교회가 등장합니다.
초기 교회는 순수 유대인들만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설령 이방인들이 있다하더라고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였습니다.
[행10:45]그러므로 베드로와 함께 온 모든 할례받은 믿는 자들이 성령의 선물을 이방인들에게도 부어 주심을 보고 놀라니
한가지더 야고보에 관한 일화를 보면
갈2:11 그러나 베드로가 안티옥에 왔을 때 그에게 책망할 것이 있기에 내가 그를 면박하였으니
2:12 이는 야고보로부터 몇몇 사람이 오기 전에 그가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니, 할례자들에게 속한 자들을 두려워하여 뒤로 물러나 혼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라.
2:13 다른 유대인들도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위선을 행하니 심지어는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가더라.
2:14 마침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올바르게 행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너는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처럼 살지 아니하고 이방인들의 방식을 따라 살면서 어떻게 이방인들을 유대인처럼 살도록 강요하느냐?" 하였노라.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의 죄인들이 아니로되
2:16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되는 줄 알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의로워지고자 함이라. 이는 율법의 행위로는 아무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음이라.
윗글을 보시다 싶이 야고보가 얼마나 율법주의자였는지 그가 보낸 사람들 때문에 수제자 베드로 마저 이방인들과 밥을 먹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뒤로 물러나 위선을 행했겠습니까...
즉 야고보는 믿는 유대인들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보다 더 율법을 잘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였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한번도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신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성경이든 영적으로 적용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많은 성경의 역사적, 교리적 진리를 알야야 합니다.
처음 성경을 읽는 사람이 모세 율법을 읽으면서 이 구절들을 모두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야고보서의 역사적 진리나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이에게 바울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그 믿음은 행위가 없으면 죽은 믿음이야 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초기 유대교회에 할례나 모세율법을을 강조했던 사람들의 의도는 선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옳은 교리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가 아닙니다. 성경의 때와 대상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아무리 야고보서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성화를 가르친다고 우겨도 야고보는 절대 구원받은 이방인들을 염두해 두지 않았으며 분명히 야고보는 행위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계시받기 전 사도행전 초기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던 시기는 분명히 믿음과 행위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 뿐만 아니라 회계나 침례, 악한 행실에서 돌이키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였습니다행2:38, 3:19)
신약 뿐만 아니라 구약의 성도들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결국 같은 내용입니다.
바울도 분명히 말합니다. 지금 은혜시대 이외에는 행위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이방인들도 같습니다.
[롬2: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혼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며
하지만 지금은 은혜시대이며 이 시대는 때 기한이 있습니다.
[롬11:6]은혜로 된 것이면 더이상 행위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은혜가 더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행위로 된 것이면 그것은 더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아니하면 행위는 더이상 행위가 아니니라.
[롬11:25]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는 아무 상광도 없고, 소망도 없었던 이방인이지 선민 유대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때 우리는 책속의 주인공이 나인 것처럼 착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을때 수많은 유대인들에 관한 내용을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마냥 착각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였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로 부르셔서 엄청난 영광을 주신 것 뿐입니다.
[엡2:12]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되어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에 속하지 않는 타국인이요 약속의 언약들로부터는 생소한 사람이었으며 소망도 없고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었느니라.
야고보서를 강조하는 목사나 설교자들은 이방인들을 유대인처럼 살도록 강요하는 사람들입니다.
분명 믿는 사람들을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바울도 구원받은 성도들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한번도 거룩하게 살지못하거나 행위가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거나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에 쓴 야고보서를 들이대며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야" 라고 협박하는 설교자들이나
이방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수 없다"고 말했던 사람들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런 분들은 정말 바울이 말한 저주가 무었인지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 나눔-
참고로 EBS에서 방영한 바울과 베드로에 관한 다큐입니다.
역사적으로 야고보와 바울과의 관계를 어느정도는 이해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경륜 > 거짓을 구분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인장받은 십사만사천명은 누구인가?(열두지파의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변화) (2) | 2017.10.23 |
---|---|
[스크랩] 유대인, 이방인, 그리스도인 비교표 (0) | 2017.10.23 |
[스크랩] [답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가? (0) | 2015.03.03 |
[스크랩] [답변] 원죄란 무엇인가? (0) | 2015.03.03 |
[스크랩] 목사님들은 세금을 내지 말아야 하는가? (0) | 2015.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