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거짓을 구분함

[스크랩] [답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가?

무형11 2015. 3. 3. 15:04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가? 

 

 

 

 

로마서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니,

야고보서2:24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


윗구절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혼동을 하고 구절 중에 하나다. 이 두 구절은 수 많은 갈등과 박해 죽음, 분파를 야기 했으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종교개혁을 발단이 된 구절이다. 
루터는 로마서의 이 구절을 통하여 카톨릭에서 분리되어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으며, 카톨릭의 교리를 제공하는 이 야고보서를 정경에서 제외하고자 하였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예수 믿고 천국간다”라고 말한다.

필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외치는 어떤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아저씨 예수 뭘 믿고 구원받나요?” 그러자 그분은 “성경을 믿으라”고 하였다.

그럼 아저씨 성경 창세기부터 계시록 끝까지 다 읽고 믿어야 구원받나요?

그분은 당황하며 “무조건 믿어”이것이 다였다.

믿으라고 강요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모른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을 주장하는 이유

종교 지도자들은 “믿음으로 천국간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2:26)이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물론 이 믿음은 교회 출석, 헌금, 예배, 봉사, 교인들 데려오고 주의 종(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혹, 믿음이 있다면서 교회 출석을 등한시 하거나, 목사에게 반대하여 분파를 일으키는 사람은 즉시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며 그러한 믿음으로는 천국에 갈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목사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란 구절은 교인들을 지배하기에 가장 좋은 명분과 교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성경해석 방법
(신약과 구약을 구분함)

성경해석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시대”와 “대상”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 첫번째가 구약과 신약을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두시대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한다.
대부분 구약은 "옛 언약"과 신약은 "새 언약"으로 알고 있다.
신약은 정확히 번역하면 “new testment" ”즉 "새 유언“이란 뜻이다.
이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던 대부분의 공생에 기간은 신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약이라고 했을때 마태복음 부터라고 말을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선지자들이 기록한 구약 성경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구분하기 위해 나누었을 뿐이다. 더하여 우리나라는 번역을 하면서 새로운 언약 (신약)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치면서 이러한 오해는 더욱 사람들을 혼동되게 사람들의  그래서 신약의 시작은 예수님 탄생일부터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 이후부터 시작된다.(히9:15-16).

그래서 예수께서도 구약에 사셨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셨던 것이다.

하지만 부활이후 신약이 시작되자 제자들은 부활과 죄사함에 대하여 전파하였다.


성경을 대상에 따라 크게 2부류로 나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스라엘)민족과 이방인(이외민족)으로 나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주시고 이것을 지킴으로, 이방인들(우리민족 포함)은 양심을 지킴(롬2:15)으로 의롭게 되었다.

하지만 부활 사건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구분하지 않으시고 부활을 믿는 누구나 “하나님의 의”로 구원받도록 변경하셨다(고전12:13,롬10:3),

처음에는 12사도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먼저 유대인들에게 (마10:6) 이 사실(복음)을 전하였으나, 유대인들은 거절하였고, 오히려 그들이 개와 벌레로 취급하던 이방인들(타민족)이 받아들였다(갈2:15,행10:45.행11:7-9),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숭앙하던 유대인들은 값없이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하튼 유대인들의 거부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 이 사실을 전하도록 즉 “바울”을 따로 선택하시어(롬1:16,갈2:7-8,딤후1:11), 12사도들 조차 몰랐던 복음의 신비를 알려주신다(엡3:5-6).

즉 야고보가 편지를 쓸 당시 AD47년은 열두사도는 유대인들에게, 바울사도는 이방인들에게는 복음을 주로 전하였던 시기였다.

이들은 동일한 예수의 부활 소식을 전하였지만, 야고보를 비롯한 열두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 불완전한 메시지, 즉 이방인들도 율법을 어느정도 지키도록 주장하였으며(행15:13-20,행15:1-5), 이것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은 바울은 다른 사도들에게 율법(행위)으로 의롭게 되지 않음을 강력하게 반박하였다(갈2:11-17,고전10:27).

 

 

믿음의 정의 

사전 :“믿음 - [명사] 1.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

사전적 정의는 믿음 윗글 그대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한 사전을 찾아봐도 믿음이 행위를 말하는 경우는 없다.

 

 

좀도 쉽게 표현하면  “믿음은 마음으로 하는 것”인고 “행위는 몸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말한 것이다.

 

“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롬10:10]”

 

[롬10:8]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노라."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분명한 것은 믿음은 마음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3가지 방법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3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째 "명령", 둘째 "조건적 약속", 셋째 "무조건적인 약속"이 있다

 

이런 원칙으로 야고보서와 로마서를 살펴봐야 한다.

 

로4:3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바울)

                                          VS

야 2:21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바울과 야고보는 각각 아브라함의 사건을 인용하며 한쪽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말하고 한쪽은 반대로 행함으로 의롭다고 말한다.

 

여기서 먼저 인용한 사건이 서로 다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첫번째로  바울이 인용한 구절을 보자

 

(무조건적 약속)

창15:5~6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말씀하시기를 "이제 하늘을 쳐다보고 별들을 셀 수 있다면 그 별들을 세어 보아라." 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시더라.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주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더라.

즉 아브람이 의롭게 되는 사건과 자녀들이 하늘의 별들만큼 많아지는 사건은 별개의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만일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의롭게 되지 못하였고 구원조차 받지 못하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아닌 "아브람"에게 이삭을 낳기 전 아브람의 자녀가 하늘 별들만큼 많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인용한다.

아브람은 이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할수 있는가?

 

아브라함의 행위로 이 약속을  변경시킬 방법이 없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분의 약속을 믿었고 그 믿음이 아브라함의 의가 된 것이다.

 

참고로 우리는 믿는다는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는가? 이다 구약의 누구도 복음을 믿은 사람이 없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라고 하지만 그의 믿음은 "복음을 믿는 믿음"이 아니다. 단지 믿음 만으로 의롭게 되는 예표로 인용한 것 뿐이다.

 

 

성경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명령이나 조건적인 약속을 하신다.

하지만 종종 무조건적인 약속을 하시는데

이러한 일방적 약속은 인간의 행위나 믿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무조건 약속)

"창9:11 내가 너희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육체가 홍수로 인한 물들로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며, 또 땅을 멸망시킬 홍수가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라."

이 약속은 노아가 믿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지키신다.

 

 

(조건적 약속)

창 2:16-17 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

(조건적 약속)

창7:1-5 주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오라. 네가 이 세대에서 내 앞에 의로운 것을 내가 보았음이니라.노아가 주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모두 행하더라.

 

성경의 대부분은 조건적인 약속이거나 명령이다.

이러한 조건적인 명령이나 약속은 반드시 행위가 동반되는데...믿음과는 전혀 상관없다. 아담조차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를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믿었으나 먹고 죽었다.(딤전2:14)

방주에 탓던 세아들과 며느리가 믿음이 있었다는 구절은 없다. 그들의 믿음보다는 노아의 방주를 탄 행위로 물에서 살아 남은 것이다.

 

하지만 야고보서에 야고보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약속"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명령"을 인용한다. 

 

(명령)

창22:1~2 이 일들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말하기를 "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독자 이삭을 이제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산들 중에서 내가 네게 알려 줄 한 산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시더라.

 

이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믿어야 하는가? 물론 믿어야 한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이런 명령을 받은 경우 우리는 "믿는다" 라고 표현하지 않고 "순종한다"고 말한다.

군대에서 상관이 "적진으로 진격하라" 명령하면 "예 믿겠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한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은 "일방적인 약속"이 아니라 "일방적인 명령"인것이다.

 

바울과 야고보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면서 같은 사건을 인용한 것이 아니다.

명령에 따르는 자는 기본적으로 믿음을 지닌 자들이다. 하지만 믿음을 지녔다 해서 반드시 행하는 것은 아니다.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은 믿지만 부당하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거절하거나 항명한다. 이처럼 믿는다해서 모두 복종하는 것 아니다.왜냐면 종종 믿음이 없어도 복종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종하는 자는 대부분 믿음이 있다. 이부분을 야고보는 말하는 것이다.

 

바울도 분명히 "복음이 계시되기 전"에는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신다고 말했다. 즉 구약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원칙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구약 때까지 만이다.

 

(조건적 약속)

롬2:6~8 그 분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니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다투고 진리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불의에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분개와 진노로 하시리라.

                                          vs

(무조건적 약속)

[롬4:5-6]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행함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는 사람의 복에 관하여 다윗도 말하였으니

 

복음(고전15:1~8)은 조건적인 약속인가? 무조건적인 약속인가? 아님 명령인가?

복음은 이미 일어난 사건으로 순종의 대상이 될수 없다. 구지 순종한다면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과거를 믿는 믿음"은 오직 사실을 인식함에 있지만 "미래를 믿는 믿음"은 반드시 행위가 동반되어야 그 약속을 받을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미 일어난 과거적 사건이다 과거적 사건에 대해 어떠한 조건도 붙이지 않으셨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미래의 유업, 상급이나 면류관에 대한 조건적 약속이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상급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위가 있어야 한다

 

(조건적 약속)

고전 3:13~15 각 사람의 일한 것이 나타나게 되리니 그 날이 그것을 밝힐 것이라. 이는 그것이 불로써 드러나고, 또 그 불은 각 사람의 일한 것이 어떤 종류인지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세운 그대로 있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불에 의해서 그렇게 되리라.

 

즉 만일 게으르고 나태한 그리스도인들을 독려하려면 이스라엘에 보면 야고보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바울의 서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즉 상급이나 구약의 구원은 행위가 꼭 필요하지만 신약의 구원은 "꽁짜"이다.

 

[롬3: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freely,꽁짜) 의롭게 되었음이라.

[롬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값없이(freely,꽁짜)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고전2: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freely,꽁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야고보서의 기록 시기와 대상 

 

우리는 신약이 주로 서신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편지를 쓸 때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한가. 연예편지나, 내용증명등 사실을 전하기 위한 글을 잘 썻다고 하자 그런데 주소를 잘못썻다 하자 아무리 좋은 내용과 글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우리는 모세 오경을 읽고 “안식일을 지키거나(어떤사람은 일요일이 안식일로 착각하는데 안식일은 토요일이다.), 추어탕이나(레11:12), 돼지고기(신14:8), 금지하거나, 유월절을 지키려 하는가?.

지키지 않는다 왜냐면 모세 오경은 유대인에게 준 율법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해답이다.  야고보서는 먼저 누구에게 전하였던 편지를 살펴보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널리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야고보서1:1)

당신은 열두지파인가? 열두지파라고 우긴다면 어느지파인가?

야고보는 자신의 동족 유대인에게 행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마치 성경에서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모세 율법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나무를 하러 갔다가 처형을 당한 사람도 있다.(출31:15,민15:32-36) 만일 구약의 유대인처럼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다면 아마 교회에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이 “주일성수”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하는 목사들도 있다.

성경 어디에 주일을 지키라는 구절이 있는가? 이들은 자신의 이익(헌금)을 위해 율법을 주장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마치 안식일에 벌을 받았던 것처럼, 교인이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것처럼 겁을 주고 협박을 한다.

이와 같이 이들은 자신의 교인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열두지파에게 보낸 서신을 이방인(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것처럼 해석한다.

이들은 자신의 죄에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게 행위를 강조하므로 더욱 죄책감을 지니도록 만들고 이것을 이용하여, 교회 출석(기도회), 성사, 봉사, 헌금등을 강요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죄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신다. 그래서 “자신의 의”이 아닌 “하나님의 의”를 주심으로 구원하도록 하신 것이다.(롬3:2,210:3,고후5:21)

루터는 죄책감에서 해방되고자 온갖 고행과 교회의 성사(미사,고해성사)를 하였지만 평안을 얻지 못하였다. 그는 바울서신을 연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의”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알게 되었고 구원을 얻게 된다.(롬1:17,롬10:10,갈3:11)

그런데 개신교에서 다시 유대서신 야고보서를 주장하며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라고 주장하며 행함으로 구원을 얻고자 한다.
거짓 목사는 교인들의 믿음보다 돈이 필요하다. 따라서 유대인의 서신인 야고보서가 필요 했던 것이다.


사탄도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한 사실을 기억하라.(마4:6)

“마4:6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뛰어내려 보라. 기록되었으되 '그 분께서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서 어느 때라도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고 하였느니라." 하더라.”

사탄의 성경 인용 방법은 아주 간교하다,  대상을 바꾸거나 시기를 엉뚱하게 적용시키는 것이다.

위 사탄의 인용 구절에서도 죽으로 오신 초림 예수께, 왕으로 오실 재림에 관한 구절을 적용 시키려 한 것이다.


즉 성경에는 수 만 구절이 있다. 자기가 원하는 어떤 구절이라도 뽑아서 사용할수 있다.

심지어 “하나님은 없다”(시14:1)란 구절도 있다.

즉 거짓 목사는 자신이 필요한 구절로 열심히 믿고자 하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거짓 목사들이 우리의 자유를 뺏앗이 노예로 삼고자 한다(갈2:4)

당신이 성경을 정확히 모르면 당신은 거짓 목사의 노예가 된다.

노예는 자신이 생각할수 없으며 행동할수 없다. 그들은 사고가 마비되고, 비판력이 사라지면 나중에는 양심마저 화인맞게 된다.

교회 세습을 하고, 목사가 간음하고, 횡령을 하여도 아무 생각이 없는 좀비가 되는 것이다.
거짓 목사들은 이들을 필요로 한다.

자신을 교회에서 왕처럼 섬김을 받고 어떠한 짓을 하여도 눈감아 주고 헌금을 내줄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선 선하게 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것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나, 목사의 비리나 거짓에 눈감기 위해 선하게 살라고 하지 않으셨다.

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종교적 위선자들과 싸웠고 진리를 외쳤다.

하지만 지금 성경을 믿는 이들이 어떻게 믿지 않는 이들보다 더 부도덕하고, 양심이 마비되었으며, 불의에 타협하며, 겁쟁이 되었는지 세상의 빛이 아니라 어둠이 되었다.

 

-나눔-

출처 : 하나님의 경륜
글쓴이 : 나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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