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가 자살도 일종의 자신을 향한 살인이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도 하지만
가장 많은 예를 드는 것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그것을 뉘우치고 자살한 유다를 주로 예로 듭니다.
아무리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지만 뉘우치고 위대한 사도가 되었지만..
가롯유다는 뉘우치기는 했지만 자살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는 주장입니다.
먼저 성경에 구원에 관한 기본 교리는 간단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인정하고 그분을 자신의 죄를 위해 죽고 부활한 구주로 믿기만 하면 부활과 영생을 약속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리는 유명한 목사들도 대부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에 관한 교리를 바꾸어 가면서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구원은 영속적으로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자신의 잘못된 행위로 잃어버릴수 있다는 것을 가르침으로 중세 암흑시대처럼 단서를 붙여 종교의 노예로 만들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린도 후서5:8 우리가 자신에 차 있고 정녕 몸에서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것이라.
이처럼 바울은 죽음에 대해 아주 긍정적이였습니다. 그는 그래서 뻔히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일 것을 알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으며 이것은 어쩌면 이러한 사실은 자살보다 더한 죄일수도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고 자신은 주님께 가는 것이닌까요.
여기서 언급하고자 하는 내용은 유다가 진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을 했고, 자살을 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기 때문에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주장이 올바른 교리인가 확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27:3 그때 주를 배반한 유다가 주께서 정죄받으신 것을 보고 스스로 후회하여 은 삼십 개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되돌려 주며
27:4 말하기를 "내가 무죄한 피를 배반한 죄를 지었다."고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그 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고 하더라.
27:5 그러자 그가 은전들을 성전에 내던지고 나가서 목매어 죽으니
윗 구절을 보면 유다는 뉘우치고 자살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때 항상 저자의 관점으로 이해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 기자들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긴 했지만 각자 다른 관점으로 기록을 합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단편적인 어린아이의 관점으로 기록하기도 하고 아주 유식하고 똑똑한 사람들도 아주 깊이 생각해야만 이해할수 있는 관점으로 기록하기도 합니다.
즉 성경의 어느 한 부분을 보았다고 그것이 성경 내용의 전부가 아님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유다가 배신것을 뉘우치고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살을 했다는 보이는 관점 말고 다른 관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글을 라킨 성경학자의 적그리스도에 관한 한 부분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말하기를....
{아무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이르지 않고서는 "그날"(주의 날)이 오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나서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리라. 그는 대적하는 자이며 또 하나님이라고 불리우는 모든 것과 숭배받는 대상 위에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성전(예루살렘에 다시 재건된 성전)에 앉아 하나님처럼 보여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느니라... "불법의 신비"가 이미 활동하고 있나니 현재(바울이 살던 당시)는 막는 자가 있어 막을 것이나 그(성령)가 그 길에서 옮겨질 때까지만 그리하리라. 그리고 나서 그 "불법자"가 나타나리니 주께서 그를 자기 입에서 나오는 영(beath)으로 소멸하시고 그의 찬란한 오심으로 제거하시리라. 그 불법자가 오는 것은 "사탄의 역사"에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이적"과 멸망하는 자들 안에 있는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오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살후2:3-10).
적그리스도를 "불법의 신비" 혹은 "불법자"라고 부른다. 즉 그는 "불법"의 원인이 아니라, 그것의 열매이며 결과이다. 이는 그가 이미 세상에 선포되어졌으며 나타나고 있는 끓어오르는 "불법"의 가마솥으로부터 올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적그리스도를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 이름은 성경에서 단지 두 번 사용되었다. 첫 번째는 요한복음17:12에서 그리스도께서 유다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으며, 두 번째는 본문의 적그리스도에게 사용되었다. 사도 바울은 또한 적그리스도를 본문에서 "불법의 신비"라고 부른다. 이 뜻은 무었인가? 디모데전서3:16에서 그리스도는 "경건의 신비"라고 하였는데, 즉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셨는가? 성령에 의해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던 것이다(눅1:35). 경건의 반대는 불법이다. 따라서 "불법의 신비"는 "경건의 신비"를 대적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가 "경건의 신비"라면 적그리스도는 "불법의 신비"이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처럼 적그리스도는 사탄의 "멸망의 아들" ,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의해 처녀에게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적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잉태한 여자(반드시 처녀일 필요는 없음)로부터 태어날 것이다. 이것은 사도 요한 이후 수 많은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들에 의해 알려졌으므로 새로운 견해는 아니다. 성경은 이것에 대해 몇가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창세기3:15에서 하나님께서는 뱀(사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여자의 씨는 그리스도이며, 뱀의 씨는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또한 요한복음8:44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헬라어에서 "거짓말하다"라는 단어 앞에는 정관사가 붙어 어떤 한 사람을 지시한다. 그래서 마귀를 거짓말라고 일컬어질 때는 그 자신의 아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거짓말"이고 그의 아버지는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이다. 즉 "거짓말"은 멸망의 아들인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유다를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렀을까? 그는 어떤 여인에 의해 태어난 사탄의 자식이었는가? 아니면 사탄이 육신화된 것이었는가?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스스로 말씀하시는 것에 유의해야만 한다. 요한복음6:70,71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고 하시니라. 주께서는 시몬의 아들 유다 이스카리옷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이는 그가 열둘 중의 하나로 주를 배반할 자였음이라.}라고 말씀하신 구절을 볼 수 있다. 성경 어떤 구절에서도 "마귀(the devil;R.V.)"라는 말이 사탄을 제외한 어떤 사람에게 적용한 적이 없었다. 여기서 마귀는 디아볼루스(diabolus)라는 단어인데 정관사가 사용된다. 따라서 "그러나 너희 중에 하나는 그 마귀니라"고 읽어야 한다. 이것은 유다를 통한 사탄의 육화, 즉 "불법의 신비"를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요한복음17:12에서 왜 예수님께서 그를 "멸망의 아들"이라고 부르셨는가를 설명해 준다.
이것은 성경에서 "마귀(diabolus)"라는 단어를 사람에게 사용한 오직 한 구절이며, 이것은 "육화(incarnation)"를 의미한다.
"멸망"은 한 장소이며(계17:8,11), 또한 인간들이 떨어지게 될 하나의 "상태"이다(딤전6:9,히10:39). 그리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했던 인간들은 "멸망의 아들들"인데, 이들은 변명할 수 없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다와 적그리스도는 멸망의 창시자인 마귀의 자식들이며 "멸망의 아들들"이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마귀에 의해 "사로잡혔거나" 조종당하는 상태가 아니라, 그들은 마귀가 육화된 마귀 자신인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유다와 적그리스도가 둘 다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리웠다면 그들은 동일한 인물인가?, 아니면 다른 두명의 '멸망의 아들들'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 문제를 같이 살펴보자. 요한계시록11:7에서 보면 "두 증인"을 죽인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온 "짐승"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구렁"에 가게 되었는가? 만약 유다와 적그리스도가 하나의 동일한 인물이고 유일한 한 명의 "멸망의 아들"이라면 그는 사도행전1:25에서 처럼 유다는 "자기 거처"로 갔다고 했을 때, 그 거처는 "구렁"을 말한 것일 것이다. 유다가 자기가 가야할 곳으로 갔다라는 구절처럼 어떤 다른 사람에게 쓰여진 적이 없다. 다시 계시록17:8에서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고, 앞으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와서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 "짐승"은 "두 증인"을 죽인 인물로서 그는 적그리스도이다. 지금 여기에서 그에 관한 네가지 언급이 있다. 첫째 그는 전에는 "있었고", 둘째 그는 지금은 "없으며", 셋째 앞으로 그는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올" 것이며, 넷째로 "멸망으로 들어갈"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요한이 살았던 당시에는 "짐승"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전에는 지상에 있었으며 앞으로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다시 올라온 뒤에 다시 내려갈 것이다. 이것은 적그리스도가 전에는 지상에 있었으며, 미래에 다시 "구렁"에서 올라올 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가 과거의 어느 시기에 있었느냐?"는 질문이 생길 것이다. 만일 유다와 적그리스도 동일 인물이라면 이 질문은 쉽게 해결된다. 유다가 땅에 있었을 때 그는 있었으며, 유다가 "그 자신의 거처(his own place)"(행1:25)로 갔을 때 지상에 그도 없었다. 유다, 즉 적그리스도가 다시 앞으로 "깊은 구렁"으로부터 나타날 것이다.
저자는 유다와 적그리스도에 관한 이 견해를 반드시 옳다고 고집하지는 않지만 열린 마음으로써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유다와 적그리스도 둘 다 "멸망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견해이기 때문이다.
위 글에서의 요약을 하자면 유다는 죽어서 지옥에 간 것이 아니라 끝없이 깊은 구렁이라는 "자기 거처"로 갔으며 그는 멸망의 아들과 마귀로 불리운다는 것을 통해서 불법의 신비로 통해서 태어난 사람 즉 앞으로 올 적그리스도임을 설명합니다.
물론 윗 구절을 하나의 견해 내지 주장으로 보셔도 상관은 없겠지만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이해하려면 여러가지 견해와 그 타당성을 생각해 보아야 할것입니다.
이 견해 대한 다른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은 구약을 통하여 장소와 시기는 어렵지 않게 알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베들레헴에서 성전이 재건된후 62주 432년(유대력 기준) 후에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예언은 거의 오차없이 성취되었으며 더하여 아래 구절에 보면 그 메시야는 바로 죽는다고 기록됩니다.
이것은 다른 창세기의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는 내용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창3:15]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리니, 그녀의 씨는 너의 머리를 부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부술 것이라.
다니엘
24 칠십 주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성에 정해졌나니, 허물을 끝내고, 죄들을 종결시키며, 죄악에 화해를 이루고, 영원한 의를 가져오며, 그 환상과 예언을 봉인하고, 지극히 거룩한 이에게 기름 부으려 함이라.
9:25 그러므로 알고 깨달으라. 예루살렘을 복원하고 건축하라는 그 명령이 나오는 때부터 메시야 통치자까지 칠 주와 육십이 주가 될 것이요, 그 거리와 그 성벽이 재건되리니 곧 고난스런 때들이라.
9:26 육십이 주 후에는 메시야가 끊어질 것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요, 또 장차 올 그 통치자의 백성이 도성과 성소를 파괴하리니 그 끝은 홍수로 뒤덮일 것이요, 그 전쟁의 끝에는 황폐함이 정해졌느니라.
메시야가 끊어지는 것은 그의 발꿈치를 부순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머리를 부순 사건은 무엇일지 추론해 볼수 있습니다.
발꿈치를 부순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래 구절 처럼 분명히 일부 상처를 입힌다는 것입니다..
[요19:34]그 병사들 중 하나가 창으로 주의 옆구리를 찌르니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20:27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나의 손을 보고 너의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니
발꿈치를 부순다는 것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후 입은 지닌 상처를 의미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죽음을 의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부활로 해결되기때문에 예수님께는 머리를 부수는 것과 같은 큰 상처는 아닌 것입니다.
어째든 예수님의 부활한 이후는 분명희 다시는 발꿈치를 부수어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뱀의 씨가 예수님에게 상처내는 일은 그냥 영의 일이 아님을 알수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뱀의 씨의 짐승의 머리를 부순 사건은 영의 일이 아니라 실제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계11:7]또 그들이 자기들의 증거를 끝마칠 즈음에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올라온 짐승이 그들과 전쟁을 하여 그들을 이기고 또 죽이리라.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흰 말이 보이더라. 그 위에 앉으신 분은 신실과 진실이라 불리며 의로 심판하고 싸우시더라.
19:12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머리에는 많은 왕관이 있고 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며
19:13 피에 적신 옷을 입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더라.
19:20 그러나 그 짐승이 잡히고, 짐승 앞에서 기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그와 함께 잡혔으니 그는 짐승과 더불어 그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형상에 경배한 자들을 속이던 자라. 이 둘이 유황으로 불타오르는 불못에 산채로 던져지더라.
계20:10 그들을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그 곳에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영원 무궁토록 밤낮 고통을 받으리라.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는 일 곧 이것이 바로 머리가 부숴지는 일입니다. 이것이 실제적인 일이였듯이
마찬가지로 사탄이 예수님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실제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실제적이라는 것은 로마 병사나 빌라도가 마귀의 속임수에 죽이기는 했지만 모르고 죽였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는 분명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제사장들이나 바리세인들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찬동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알지 못하고 한 일입니다.
[눅23:34]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시여,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시더라. 그리고 그들은 주의 옷을 나누고 제비를 뽑더라.
하지만 사탄은 알고 고의적으로 예수님의 발꿈치를 부수기 위해 작업을 한 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한 사람 바로 "유다"인 것입니다.
요13:1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으니 그는 온 몸이 깨끗함이라. 너희는 깨끗하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니라."고 하시더라.
13:11 이는 주께서 자기를 배반할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니라."고 하
신 것이라.
요13:26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빵 한 조각을 적셔서 주는 자가 그니라."고 하시고, 빵 한 조각을 적셔서 시몬의 아들 유다 이스카리옷에게 주시니라.
13:27 그 빵 조각을 받은 후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가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행하라."고 하시더라.
즉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아셨으며 그가 자신에게 행할일 아니 행해야 일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유다가 배신할줄 알면서도 동행하셨던 것입니다.
유다 또한 자신의 행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은 여자의 씨에게 최대한 크게 상처를 입히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거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즉 메시야를 죽여야 자신의 왕국을 최대한 오래동안 유지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째든 이 불변한 관계는 예수님께서 "네가 행애야 일들을 속히 행하라" 라는 말씀으로 끝이 났으며...
이 자가 바로 뱀의 씨이면서 동시에 뱀인 바로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여자의 씨는 처녀에게 태어남을 의미하지만 뱀의 씨는 자연스러운 출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씨는 남성에게만 있는 것으로 사탄의 씨란 반드시 예수님과 같은 처녀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탄의 씨로 잉태되어 태어난다는 점입니다. 창세기에서 거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들과 여자들에게서 태어났듯이 이사탄의 씨도 마찬가지로 여자에게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말 신비한 일임은 분명합니다.
결론적으로
유다는 우리가 겉모습만 보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한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유다는 자살을 해서 지옥에 갔다는 구절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그는 지옥에 간 것이 아니라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갔으며..
그 끝없이 깊은 구렁은 사탄의 아들이 거하는 장소입니다.
영화같은 이야기지만 성경은 미래에 이 자는 이곳에서 다시나와 지상에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어째든 유다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지만 자살했기 때문에 지옥에 갔다는 주장은 근거가 전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내용은 전혀 교리적으로 옳지 않음을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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