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거짓을 구분함

[스크랩] [반론에 대한 답변]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가?

무형11 2015. 3. 3. 14:59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가 ?

http://cafe.daum.net/dispen/RLEg/317

 

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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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님의  윗   본문글의   요지가   <야고보서는  유대민족에게  해당하는  서신서이다>    <유대인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그리스도인과는   다르게 !!  율법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로  파악됩니다.
 
제 견해는  야고보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과   구별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된다고  봅니다.  또  야고보서의  행위강조는,   유대인의  <율법에따른  행위>를   강조한  것이   아니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마땅히  따라와야할  행위>인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야고보서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유대인이방인과는   하등의   상관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알고  순종해야할    거룩한  새법--생명의  성령의   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유대인만을  대상으로한,  유대인의 서신서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고   순종해야할,   모든  그리스도인의  서신서입니다!!
 
서신서  처음에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보내졌다하여,  이스라엘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가   수신대상이   로마에있는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됩니까???  로마서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 처럼...야고보서도   모든  그리스도인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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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에 대한 답변 :

 

위글에 대한 반론은 아마도 대부분의 교회에서 야고보서를 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1. 로마서가 로마에 있는 사람에게만 보낸 서신이 아니기 때문에 야고보서도 유대인들에게만 보낸 편지가 아니다

 

먼저 로마서와 야고보서의 대상을 기록한 구절을 보면

 

로마서 1:7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하노니....

 

야고보서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널리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위 두 구절의 차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글을 쓰는 사람의 자격의 문제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글을 쓸때 글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의 자격입니다.

한 예로 어떤 사람이 몸이 아파 병원에 갔는데..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처방전을 써주며 이러한 약을 먹으로 한다면

아무도 그 처방전에 따라 약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앞서 여러 글을 통하여 이방인들의 사도는 바울이라고 강조한 점을 알려드렸습니다.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사도바울 한 사람 뿐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몇구절 살펴보면

 

[행13:47]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내가 너(너희들이 아닌 바울)를 이방인들의 빛으로 세웠으니, 너는 땅 끝까지 구원을 베풀라.' 하였음이라." 하더라.

 

[롬11:13]내(바울)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들의 사도이기에 나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나니

   

[갈2:8](베드로에게 역사하셔서 할례받은 사람들의 사도 직분을 주신 그 분께서 나(바울)에게도 역사하시어 이방인들을 위한 직분을 주셨느니라.)

 

[갈2:9]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고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바울,바나바)가 이방인들에게로 가고 그들은(야고보, 베드로, 요한) 할례받은 자들에게로 감이라.

 

[딤전2:7]이를 인하여 내(바울)가 전도자사도지명을 받았으며,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노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바울) 이방인들의 선생이 되었노라.

 

[딤후1:11]이를 위하여 내가(바울) 이방인들의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느니라.

 

[롬15:16] 나(바울)로 이방인들을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게하셨으니....

 

[살전2:16] [행13:46][행14:27 등등

 

 

그렇다면 사도들이 받은 명령을 보면

 

[마10:5]예수께서 이 열둘(사도들과 야고보)을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의 길로도 가지 말고, 또 사마리아인의 성읍에도 들어가지 말고

 

 

 

그렇다면 야고보는 어떠한가요?

동명이인 야고보가 3명이 있습니다. 한명은

사도행전 15장에 보시면 너희가 모세의 율례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우리의 조상이나 우리도 감당할수 없었던 멍에를...



분명히 "구원은 값없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급이나 유업은 다릅니다. 이것은 행위가 관련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자동으로 상급이나 유업이 주어지진 않습니다 
.
즉 "행위가 없는 믿음으로 상급을 받을수 없다"는 것을 영적인 측면으로 주장한다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영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역사적" "교리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야고보서를 예를 들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성경은 3가지 면을 알고 적용 할줄 알아야 합니다. 
 
첫째 역사적 적용: 
(문자적 적용이라고도 함) 
문자적으로 야고보서는 AD40년이전(행12:2)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은 유대에 흩어져있는 12지파”에게 보낸 서신 문자 그대로입니다. 이 시기는 아시겠지만 사도 바울을 통해 아직 명확한 "은혜의 복음"이 계시 되지 못한 시기입니다. 

즉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등 바울서신이 기록되기 이전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시기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성령을 받기 위해 침례를 받는 등 구원을 위해 믿음 이외에 행위가 필요한 과도기적 시기였습니다. [행2:38]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인간님께 반박에 앞서 쓴 글 보시기를 바랍니다. 
야2:21 우리(이 우리는 유대인을 말하지 결코 이방인이 아닙니다.)의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렸을 때, 그가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야2:24 이제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즉 이 시기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시기가 아니였습니다. 분명히 여기서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교리적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상급을 받기 위해서는 행위가 필요하다가 아닙니다. 문자적으로 말 그래도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상급을 받기 위해 언급한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다 싶이 구원에 있어 의롭게 되는 것은 필수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구약에서 의롭게 되는 방법은 오직 행함입니다. 물론 구약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행함이 없는 이들에게 무조건인 은혜를 베풀어 구원하신 적은 없습니다.

 이 행함이 율법이든 사랑의 실천이든  문자 그대로 마음이 아니라 몸의 행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문자적으로 야고보의 조상 즉 믿는 유대인들의 조상입니다.

 이 구절을 아무리 믿는 이방인이라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초등학교 1학년도 읽으면 이해할수 있는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 조상입니다. 당시 이 구절을 들고 유대인들과 논쟁한다면 무시당하거나 놀림받을 것임이 뻔합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의 영적인 조상이 될수 이지만 문자적 조상은 아닙니다. 

성경을 영적으로 믿는 분은 지옥, 천국 휴거나 재림도 영적이며 구원도 영적으로 구원받을 것입니다. 

 즉 다시 정리하건데 문자적으로 이 서신은 “유대에 흩어져 있는 12지파” 중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유대인들에게 전한 서신입니다. 
 
둘째 교리적(예언적) 적용 
야고보서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믿음 만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교리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교리는 앞으로 대환란 시대와 거의 같습니다. 
대환란 시기는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계명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즉 환란의 주 대상이 유대인임은 잘 알고 계시리라 믿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은혜로 구원받는 방법을 알려준 이방인의 사도 바울이 있듯이 
이들에게도 대환란 동안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서신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서신 이후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계시록”등입니다. 
이들은 구원의 보장은 없으며 오직 믿음과 행위로 스스로 지켜가야 하는 것입니다. 
 
[히6:6]만약 떨어져 나간다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시킬 수 없나니,이는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공개적으로 조롱함이라. 
 
[계14:12]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으며 여기에 하나님의 계명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하더라. 

* 참고로 어떤 분은 이 성도를 교회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성경에 성도는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약5:8 너희도 인내하며 마음을 견고케 하라. 주의 오심이 가까움이라. 

* 이 주의 오심은 휴거가 아닙니다. 휴거는 바울이 처음 계시한 내용으로 야고보가 알고 있던 것은 주님의 지상 재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지상재림을 기다리는 부류는 환란성도입니다.

과거의 야고보나 앞으로 휴거후 믿게 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야고보는 승천후 곧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처럼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교회에서 한몸이 되는 사실과  은혜시대가 자그마치 2000년이나 되리라고 몰랐습니다. 
 
바울 [엡3:5]그것이 성령으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지금 계시된 것처럼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하였으니 
 
롬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게 되었다면 그에게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그래서 정확한 계시를 받았던 바울은 할례 이삭을 받침으로 의롭게 되는 아브라함( 창22)의 사건을 인용하지 않고 아무런 행위를 할수 없었던 믿음으로 의롭게 여김을 받았던 창 15:5을 인용합니다. 
 
하지만 야고보가 예수님이 곧 오시기 직전을 염두한 이서신은 앞으로 예수님이 재림하기 직전과 일치하는 교리와 같습니다.
즉 "인내"와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받는 환란시대를 언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예언적으로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영적 적용
 
 
[딤후3: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 
[롬15:4]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이는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소망을 지니게 하려 함이니라. 
 
이처럼 얼마든지 구약 율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훈과 교리는 다릅니다. 이솝우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교훈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복음의 진리는 알수 없습니다. 이처럼 구약 율법을 아무리 능통해서 신약을 모르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야고보서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교훈을 얻기 위해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첫째 계명 “하나님과 형제들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계명을 을 못 지키면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까? 
 
아닙니다.  
절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앞서 님이 스크랩한 내용이 바로 “영적 적용”입니다. 
이러한 영적 적용은 얼마든지 교파마다 사사로이 해석할수 있습니다. 
왜 카톨릭이나 개신교회에서 야고보서를 자주 인용하는지 아십니까.. 
이들은 위에 있는 영적적용을 하고자 인용하지 않습니다. 
앞서 그분이 아무리 야고보서는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것을 강조한다 설명할지라도 그 사람들은 이 내용을 대상만 바꾼체 문자적으로 가르칩니다. 
 
[약2:24]이제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이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 
 
앞서 스크랩한 글처럼 이 행함은 “사랑하라” 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엄청난 교리적 문제를 야기합니다. 
말을 바꾸어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이 “네 이웃을 사랑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요, 믿음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사실입니까? 
우리가 “사랑함”으로 의롭게 되었습니까? 
  
[롬4:5]행함이 없어도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그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여겨지느니라. 
[엡2:8]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요일4:10]여기에 사랑이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의 아들을 우리 죄들을 위하여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라. 
 
님께서 스크랩하신 내용은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위 내용은 개신교 목사들이 자주 말하는 믿음과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드는 
“믿음과 행위로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는 말과 다를바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행위를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바꾼것 뿐입니다.
이 내용은 일반 카톨릭 교회에서도 언급합니다. 즉 카톨릭이 다른 교단과 에큐메니컬 운동할때 주로 쓰는 모토가 무엇입니다.
"바로 네 이웃을 사랑하라"입니다.
 
즉 아무리 개신교나 카톨릭에서 성경을 잘못 적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적하기 위해 또 다른 영적적용을 하는 것은 “목적이 정당하다고 수단은 잘못되도 괜찮다”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스크랩한 글의 내용은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영적인 적용”을 한것입니다. 
영적인 적용이란 바로 교훈을 위한 사사로운 해석입니다. 
즉 저분의 주장은 보편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야고보서는 "단단한 음식"입니다. 이것은 "역사적" "교리적"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영적으로 적용하기에는 계시록과 같이 어려운 서신이며 조심해야할 서신입니다. 
 
제 짧은 지식으로 전달하려니 많이 부족합니다.. 
앞서 인간님에게 쓴 글을 참조하여 읽으신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쓴 내용은 제가 새로 만든 내용이 아니라 좋은 책들과 성경을 정리한 것 뿐입니다. 
그러니 저의 의견으로만 치부하지 마시고 좋은 책들과 바른 성경을 통하여 스스로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영적적용이란 틀리고 옳고가 없습니다. 

자신의 영적적용(큐티) 내용을 남들에게 판단 받는다면 얼마나 기분나쁘겠습니까?
 
왜 로마서가 교회에 적용되는 지는 아래 구절로 대체하겠습니다.
 
롬1:7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로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1:13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모르는 것을 윈치 아니하노니, 내가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와 마찬가지로 너희 가운데서도 다소 열매를 거둘까 하여 여러 번 너희에게 가려고 시도하였으나 (지금까지 방해를 받았느니라.)
1:14 헬라인들이나 야만인들이나 지혜있는 자들이나 어리석은 자들에게나 내가 다 빚진 자로다.

[롬11:13]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들의 사도이기에 나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나니
[갈2:8](베드로에게 역사하셔서 할례받은 사람들의 사도 직분을 주신 그 분께서 나에게도 역사하시어 이방인들을 위한 직분을 주셨느니라.)
[딤전2:7]이를 인하여 내가 전도자와 사도로 지명을 받았으며,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노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들의 선생이 되었노라.
[딤후1:11]이를 위하여 내가 이방인들의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느니라.
[골4:16]이 편지를 너희 가운데서 읽고 나면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케아에서 온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설명이 필요하다면 따로 해드리겠습니다.
야고보서를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 바울이 쓴 로마서를  동급으로 놓으시기에는 좀 무리가 있는듯 합니다.
루터가 영적으로 무지해서 야고보서를 성경에서 빼고자 한것이 아닙니다.
앞서 스크랩한 어설픈 내용으로 카톨릭의 행위로 인한 칭의 교리를 이길수 있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느냐? 안(영적으로) 믿느냐?"의 전쟁입니다.
우리가 문자적으로 믿지 못할때 즉시 영적인 교리들(사사로운 해석)이 치고 들어옵니다.
문자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많은 성경지식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책이 앞서 말씀드린 대로 "마태복음" "사도행전" "히브리서" "야고보서"입니다.
왜냐면 이러한 서신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유대인에게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다루심이 옳겨지는 서신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자적으로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울 서신을 문자적으 믿는다면 당연히 다른 성경도 문자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 서신을 영적으로 믿으면 다른 성경도 영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도 영적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재림도 영적으로 오는 것이구요...
 
당대 최고의 성경학자 루터 마저도 야고보서를 버려야만 할 정도로 야고보서를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였습니다. 왜냐면 카톨릭에서는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 대체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해석으로 카톨릭 교리나 잘못된 "행위를 통한 칭위"를 이길수 없습니다.
결국 님이 스크랩한 내용도 이 연장선인 것입니다.
제가 카톨릭 신부에게 "야고보서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상급을 받기 위한 서신이다" 이라 라고 말하면 그들은 즉시
여기 성경을 봐라 "상급이 아니라 행위로 의롭게 된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느냐?"
그럼 전 "여기서 의는 "상급을 말합니다" 라고 말하면
"넌 성경을 믿지 않는구나" 라고 신부는 비웃고 말것입니다.
님이 스크랩한 내용이 바로 이런 내용입니다.
영적으로 해석한 것을 교리로 가르치는 것은 이런 꼴 당하기 쉽습니다.
 
결코 야고보는 "구원받은 이방인이 상급을 받기 위해 행위를 강조한 서신"이 아닙니다.
이런 서신을 억지로 "믿는 이방인"에게 적용하려니 어설픈 영적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건데 역사적, 교리적, 지식없는 영적 적용은 조심해야 합니다.
사탄도 역사할때 항상 성경을 들고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서 야고보서를 붙들고 행위로 의롭게 되고자 열심히 사랑을 실천하며 살다가 죽었다고 가정합시다.
그는 백보좌 심판석에서 하나님께 항변할 것입니다.
 
"저는 유대인으로 열심히 사랑을 실천하다 죽었으니 구원해 주십시요.."
하나님께서는 너는 이방인 아니냐? 왜 분명히 여기 내 선택한 이스라엘 유대인들이라고 써 놓았는데 왜 안 믿었냐? 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오직 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것이 아니라 너의 행위로 왔으니 나는 너를 모른다 "
 
[계2:9]내가 너의 행위와 환란과 궁핍을 아노라. (오히려 네가 부요한 자로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모독을 아노니 그들(너희는)은 유대인이 아니요, 오히려 사탄의 회당이니라.

 

[계3:9]보라,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아니요, 오히려 거짓말하는 자들을 내가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로 만들었으니, 보라, 내가 그들을 오게 하여 너의 발 앞에 경배하게 하여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을 유대인들이라고 칭하는 이방인들에게 거짓말하는 자들이며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로 만들겠다고 경고하십니다.


이런 자칭 유대인들이라고 칭하는 자들은 카톨릭을 비롯해 수많은 교회에서 성경을 아무렇게나 해석함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구약에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축복을 빼앗으려다 오히려 그들에게 임한 저주를 받지 않나 싶습니다.


결코 대체신학을 따르는 자칭 유대인들은 "오직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가 나올수 있겠습니까?
 
 
  그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눔-

출처 : 하나님의 경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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